https://www.youtube.com/watch?v=IHn2w9q9LrA
'배를 채워' 만족하지 말고,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자!
(시편 17:1-15)
시편 17편은 개인 탄원시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더 나아가 적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탄원합니다.
시인은 3절과 4,5절에서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있어서 결백함을 호소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밤에 찾아오셔서 감찰하셨지만 흠을 찾지 못하였음을 근거로 자신이 실족한 인생이 아니었음을 설명합니다.
(시 17:5)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특별히 시인은 7절과 8절에서 자신은 ‘주께 피하는 자’이기에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구원해주시고, 주의 기이한 사랑을 보여달라고 탄원합니다.
자신을 눈동자 같이 지켜주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어달라고 탄원합니다.
(시 17:7-8)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이 말씀은 시인이 출애굽사건을 기억하면서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말씀을 보면 모세가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탄원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출 15:11-13)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시편 17편과 출애굽기 15장에 등장하는 같은 문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시17:7 & 출 15:12)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시 17:7 & 출 15:11)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시 17:7 & 출 15:13)
다윗은 시편 1편 말씀처럼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던 사람이었기에, 그는 고난을 만났을 때 낙심치않고 ‘주의 말씀’ 곧 출애굽기 15장을 통해 힘을 얻어 주께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다윗은 어떤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갈까요?
그는 ‘재물로 배를 채워’ 만족하는 인생이 아니라,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뵙고’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현세주의적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중심적인 가치관’으로 살아갑니다!
(시 17:14-15)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편 17편의 말씀의 시작과 끝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모두 ‘의’로 시작해서 ‘의’로 끝납니다.
(시 17:1)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시 17: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의’가 무엇입니까?
누가 ‘의로운 사람’입니까?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 자가 의로운 사람입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적 의’는 행동보다는 관계에 기준을 둡니다.
공의로우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고, 붙어있지 않는 사람이 불의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열방가족 여러분, 아마도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재물로 배를 채워’ 만족하기 보다는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얼마나 매순간마다 ‘재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만나면 쉽게 넘어지지 않습니까?
‘주의 형상으로’ 즐겁다가도 ‘현세주의적 기회’가 찾아오기만 하면 그것을 따라 즐거워하지 않습니까?
오늘 하루 ‘관계’에 집중합시다!
하나님 아버지랑 떨어지지 말고, 성령님께 붙잡혀 사는 인생을 삽시다!
의로우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영원히 신뢰하는 열방가족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