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bV3InrCuNHY 오두막 93번째 이야기 – ‘파라볼라노이,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의 교회이름 ’ 오늘 소개하는 일반서적은 양태자박사의 ‘중세의 뒷골목 풍경’이고, 신앙서적은 이도영목사의 ‘코로나19 이후 시대와 한국교회의 과제’입니다. 양태자박사님은 한겨례 웹싸이트에 ‘양태자의 중세유럽풍속사’를 연재하시는 비교종교학과 비교문화학의 전문가로서 중세 유럽 비주류 인생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쓴 책이 ‘중세의 뒷골목 풍경’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정사가 아닌 야사로 보게되는 중세시대의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은 책으로서 ‘중세의 뒷골목 인생’ ‘뒷골목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뒷골목의 종교’ ‘뒷골목의 정치’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책입니다. 특별히 제가 이 책을 소개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과연 중세시대 유럽 특별히 베네치아를 휩쓸고 간 페스트의 공포감은 어느 정도였고, 또 그 베네치아의 전염병을 바라보는 그 당시 사람들의 시선은 어떠하였는지를 소개하면서 오늘날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를 크리스챤으로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제안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네치아에는 1348-1630년 사이에 20번 이상 페스트가 나돌았습니다. 페스트 병균은 쥐들이 주로 옮겼기에 확산을 막기 어려웠고, 베네치아의 모든 다리가 쥐로 발 디딜 틈 없이 덮인 적도 있었으며 특별히 1348년 단 한 해 동안 1만명이 죽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베네치아도시의 상황을 두고 2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페스트기간’과’페스트이후’의 생각과 상황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페스트가 시작하면서 베네치아 시민들이 가졌던 생각입니다. 그들은 페스트라는 전염병에 약도 없었던 탓에 ‘신의 저주’ 때문에 전염병이 창궐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에게 회개하고 윤리적인 생활을 하면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신앙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교회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넘쳐났으며 사람들은 부적이나 성수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물론 1630년 10월에 이르러서 전염병이 신의 저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베네치아시는 구체적인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고 환경을 철저히 정비하고 마시는 물 공급에 신경을 써서 전염병을 퇴치하는데 성공하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또 한가지는 1631년부터 페스트로 죽는 사람들의 숫자가 2,000명으로 줄어들고 서서히 사라졌지만, 그 휴우증은 엄청났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찾은’ 이래 베네치아는 유럽 제일의 무역항이라는 위상을 점점 빼앗기고 말았고, 결국 베네치아의 상업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어서 서서히 내리막 길을 걷게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신앙서적은 제목에서 이미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코로나 19 이후의 시대’를 예측하면서 특별히 ‘한국교회의 과제’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책입니다. 이제까지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책들을 읽은 것 중에서 최고의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서도 책의 깊이와 넓이를 보아서는 간략하게 소개할 내용이 아니지만 일일이 소개하기에는 시간이 없기에 앞에 소개한 ‘베네치아의 예’를 통해 오늘날 2020년에 살고 있는 크리스챤들은 ‘코로나바이러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또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되어질 것인가를 예측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중세시대가 아닌 오늘날 크리스챤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하여 대답을 주고 있는 이도영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터지자 여지없이 나오는 반응은 코로나 19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이다. 과연 코로나는 하나님의 심판인가? 코로나 19 사태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p.41) 그렇습니다. 어떻게 한국의 교회 목사들은 (일부분이라 생각하구요) 중세시대의 베네치아에서나 주장할 수 있는 생각을 할 뿐만아니라 신실하고 순진한 한국교회의 장로님, 권사님 같은 분들을 유혹해서 불안을 조장하고 분노를 유발하여 중세시대보다 더 무지하게 코로나바이러스를 대응하게 하는지 정말 화가 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이자 ‘무종교 사회’ ‘다문화 사회’이고 더군다나 ‘4차 산업혁명 시대’이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세상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제시하고 또 몸으로 체화시켜 감동을 주어야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로 인도할 판에 너무나 안타까울 뿐입니다. 또한 이도영목사님은 중세시대 전염병 이후 베네치아의 위상과 역할이 변화 되어져 같던 것처럼 ‘코로나바이러스 이후’를 전문가이상으로 여러 책의 독서와 식견을 가지고 예측하고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기도 한다… 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것도 전염병이다…. 중세가 몰락한 것도 전염병 때문이다.” (p.18) 그러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한국교회가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한국교회의 공교회성과 공동체성 그리고 공공성의 회복’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도영목사님의 폭넓은 인문학 지식과 문제를 가지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재구성하고 학문간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성경적으로 해석해 주시는 것도 탁월하지만 특별히 ‘교회와 지역사회’라는 현장 속에서 ‘체화하시고 생활화’하시는 부분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목사님은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특별히 크리스챤들에게 ‘파라볼라노’가 되라고 외칩니다. ‘파라볼라노이'의 뜻은 곧 ‘위험을 무릅쓰는 자들’인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죽음과 부활의 신앙’을 몸으로 증거하라고 도전을 줍니다. 아무쪼록 이 두 책을 통해 결코 코로나바이러스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님을 기억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과 함께 어려운 난제들을 성경에 기초해서 잘 풀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더불어서 코로나바이러스를 대하는 교회와 크리스챤들의 대처에 따라서 포스트-코로나 때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를 통하여’ 펼쳐질 것인지 아니면 ‘교회를 뺀’ 그 나머지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지 중대한 기로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파라볼라노이 곧 '위험을 무릅쓰는 자들'이 되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