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y1XQnwrSl4c 오두막 95번째 이야기 – ‘생각의 탄생, 설교의 탄생' 오늘 소개하는 일반서적은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미셸 루투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이고, 신앙서적은 필립 얀시의 ‘수상한 소문’입니다. 먼저 ‘생각의 탄생’은 미시건 주립대학교의 생리학 교수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그의 아내 미셸이 ‘창조적으로 생각하기’에 관한 책을 구상하고 ‘통합적 교육’을 위한 책으로 지은 것입니다. 그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정신’들의 경험을 둘러보는 것으로 이 책의 출발점으로 삼아서 ‘어떻게 생각했으며’ 또 ‘생각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는지’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창조적인 일을 할 때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의 도구’들을 사용하는데, 이 도구들은 창조적 사고가 무엇인지에 관한 본질을 보여줍니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과학, 예술, 인문학, 그리고 공학기술 사이에 놀라운 연관성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저자는 생각의 도구를 13단계로 나눠서 논리정연하게 설명을 합니다. ‘관찰,형상화,추상,패턴인식,패턴형성,유추,몸으로생각하기,감정이입,차원적사고,모형만들기,놀이,변형,통합’ 또 뿐만아니라 직관과 상상력을 갈고 닦아 창조성을 발휘하는 방법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좋은 예로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들면서 “그는 피아노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머릿속으로 음악을 ‘그리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경우를 통해 “패턴인식을 이용해 새로운 생각을 떠올린다”는 것을 통해 생각의 도구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주장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마음의 눈으로 관찰하고, 머릿속으로 형상을 그리며, 모형을 만들고, 유추하여 통합적 통찰을 얻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에 딱 좋은 예였습니다. 그러면서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교수님은 '창조적 생각'을 위해서 ‘무엇을 생각하는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제가 소개하는 신앙서적 '수상한 소문'은 ‘생각의 탄생’ 처럼 ‘생각의 도구'를 통해 '신앙의 영역'을 어떻게 하면 잘 설명하고자 하는가 고민하는 책입니다. 필립 얀시는 자신의 책 10 페이지에서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왔다. 나는 우리 주위의 보이는 세계, 우리 모두가 사는 세상에서 출발한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자연계와 초자연계, 이 둘이 어떻게 서로 작용하고 인간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다.” 우와~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교수가 ‘창조적인 일’을 할 때에 ‘생각의 도구’를 활용하여 ‘관찰’ ‘형상화’ ‘추상’ 등의 12단계를 거쳐 결국 ‘통합’의 단계로 나아가서 ‘전인교육’을 펼쳤듯이, 필립 얀시가 꼭 같은 ‘생각의 단계’를 거치는 것은 아니지면 같은 원리로 ‘믿음의 경계지대에 선 회의자를 위한 안내서’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필립 얀시는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교수가 ‘무엇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아인슈타인의 예를 들어 ‘믿음의 경계선상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함을 주장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시대가 완벽한 수단에 혼란스러운 목표를 가졌다고 말했다. 물리학자들은 물질을 원자보다 작은 미립자로 환원시켰고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은 우리가 아는 세상 대부분의 것을 정보 비트로 바꾸었다. 그런데 우리는 사물의 작동 원리는 알지만 그 이유는 모른다. 사실 어떤 사람이 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p.25) 그렇습니다. 두 책의 접촉포인트가 여기에 또 있습니다. '창조적인 생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는 '어떻게' 생각함으로 나아가야함을 강조하던 '생각의 탄생'처럼 필립 얀시도 '수상한 소문'에서 '불신자'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원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유'에 대하여 대답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의 탄생' 43 페이지에 보면 이러한 글이 있습니다. "교육에서 '무엇'과 '어떻게'의 결별은 곧 어떤 것을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이 분리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학생들은 이해함으로써 앎에 이르는게 아니라 외움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다보니 오두막 94번째의 성경구절이 생각납니다. (벧전 3: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사실 이 두책을 선택해서 소개하는 데에는 제 자신의 설교작업에 관한 철학을 나누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설교는 과학이다’라고 생각하며 설교를 준비할 때 어떻게하면 더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실증적으로’ 잘 증명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두었던 적이 있습니다. 또 어떤때는 또다른 누군가의 말을 듣고 ‘설교는 종합예술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설교를 준비할 때어떻게 ‘감동적’이고도 ‘아름답게’ 설교를 준비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해 왔습니다. 그런 저에게 ‘생각의 탄생’ 책 19페이지의 몇 줄 때문에 제자신의 ‘설교’에 대한 정의를 나름대로세울 수 있었습니다.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그렇습니다. 성실한 설교자로 강단에 서기를 원합니다. 기존신자들에게 들려지는 설교도 중요하지만 항상 '믿음이 없는 회의론자'들을 향하여 '진리'를 설득하고자 노력하는 설교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무쪼록 매주마다 ‘믿음의 경계선에 놓여있는 회의론자들’을 향하여 설교 할 때에 하나님의 이야기를 ‘과학적 그러면서 예술적’으로 잘 증거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설교준비가 힘들더라도 ‘관찰’로 시작하여 ‘통합’의 과정인 ‘생각의 도구 13단계’를 거쳐가면서 ‘회의론자들’을 ‘전인적으로’ ‘믿음의 사람들’로 Transform 되어 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설교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만 모든 글을 쓰고 나니 성령님께서 제 마음에 들려주시는 음성이 있으시네요. "전목사, 사람이 변하는 것은 복음을 '이해'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어지는 거야."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