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119번째 이야기 - '이 끔찍한 기독교인들에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소개하는 일반서적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고, 신앙서적은 필립 얀시의 '아, 내안에 하나님이 없다' 입니다.
1986년 신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하나님의 학교' 신학교에서는 '데모하는 학생들'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신학과 학생장에 출마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그만 '광주민주화운동 영상'을 보면서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그것도 '전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지켜야 할 백성들을 총으로 개머리판으로 칼로 죽이는 영상을 보면서 제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제 신앙의 근거가 송두리채 뽑혀져버렸습니다.
특별히 전두환씨로부터 훈장을 받은 분들 중에 성결교단에서 존경받는 목사님들이 들어가 있고 길거리에서 돌에 맞아 죽는 대학생, 췌루탄에 맞아 죽는 대학생들이 즐비해가는데 교회와 목사들이 침묵하는 모습에 결국 나는 '교회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그때 읽었던 책들 중의 몇권이 니이체의 '신은 죽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짜라투스트라는 말했다' 입니다.
이 책은 결국 제가 신학의 길을 중단하게 하고 니이체의 길, 무신론자의 길, 반 기독교의 길을 가게 한 길라잡이 였습니다.
오랫만에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내가 읽고 있구나 생각되어졌고 그 젊은날의 고뇌와 방황의 순간들이 다시 내게 밀려와서 잠시 책을 내려놓고 교회 몇바퀴 산책하고 나서야 다시 책 앞에 앉습니다.
니이체는 '신이 죽었다'고 선언합니다. 그냥 철학자가 아닙니다. 전처럼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목사였던 그의 신앙적배경으로 보아서는 정말 고통스러운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지난날에는 신에 대한 불경이 최대의 불경이었다. 그러나 신이 죽었으므로, 신에 대해 불경을 저지른 자들도 함께 죽었다... 보라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pp.16-17)
물론 거기에는 역사적 배경, 철학적 배경, 특별히 바그너와 깊은 친분이 있었던 음악적 배경도 있어서 20세기의 철학들 곧 유럽 실존주의, 영미의 분석철학 그리고 후기 구조주의 사상에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이자 극복을 제시한 니이체의 사상은 2000년 동안 서구문명에서 자라온 기독교의 몰락과 니힐리즘의 도래를 재촉하였고,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은 피안적인 것데 대신하여 지금 여기 지상의 것을 생각하도록 하였습니다.
니이체의 주요사상을 간략하게 적어보면 다음 3가지 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힘에의 의지'를 통해 '피안이 아닌 지금 여기'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생을 살자는 주장이고,
"나는 인간에게 새로운 의지를 가르친다. 인간이 곧장 걸어온 이 길을 원하고 이 길을 받아들이며... " (p.47)
인간은 더이상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 힘에의 의지를 체현하는 '초인'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고,
"내게는 상처 입히지 못하는 것 결코 파묻어버릴 수 없는 것, 바위라도 뚫고 나오는 것이 있으니, 나의 의지가 그것이다. 이 의지는 말없이 변함없이 세월을 뚫고 뚜벅뚜벅 걸어간다." (pp.196-197)
초인으로서 이상을 향하여 끊임없는 자기극복을 하는 '영겁회귀'하는 존재임을 주장합니다.
"참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 무상하지 않은 선과 악,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과 악은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다시 극복되어야만 한다." (p.203)
독일어로 초인 (Unermensch)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자면 '무엇인가를 넘어선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곧 조로아스터교에서 주장하는 '영은 선한 것이고 몸은 악한 것'이라는 사상을 깨부수고 육체적 이성의 주체가 되는 초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목사로서 이런 질문을 아주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 니이체는 그토록 신을 미워했을까?"
"목사의 아들로, 목사의 손자로 그토록 기독교를 미워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런중에 다시 읽게되는 문장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몸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몸을 경멸하는 자들에게 말하고 한다.... 나는 몸이며 영혼이다." (p.50)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에 대하여'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을 영원한 삶이라는 미끼로 유혹하여 이 삶으로부터 떠나버리게 만든다면 좋으련만!...
그들은, 이 끔찍한 자들은 아직 인간이 되지 못했다. 그들이 나서서 삶의 포기를 설교하고, 스스로도 떠나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pp.72-73)
'성직자들에 대하여'
"이자들은 성직자들이다. 나의 적이다... 그들은 사악한 적들이다... 저 성직자들은 가엾다...
그들은 시체로 살고자 했고 자신의 시체를 검은 곳으로 감쌌다. 그들의 설교는 아직도 시체 안치실의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pp.157-158)
여기에 대한 신앙서적으로 필립얀시의 '아, 내안에 하나님이 없다'를 소개합니다.
이 책을 선정한 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필립 얀시는 자신의 책 여러곳에서 어릴적 자라왔던 '남부 백인 근본주의 교회'에 대한 미움 때문에 기독교를 떠났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재적으로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교회 때문에' '목사 때문에' 이 끔찍한 성직자들 때문에 '신을 떠났다'고 고백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아 내안에 하나님이 없다'라는 책을 통해 자신처럼 '목사에 대한 고민' '교회에 관한 고민' '신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격적인 신을 다시 만나게 되고 또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에게 교회는 그들에게 어떤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가를 잘 친절하게 솔직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영어제목도 Reaching For The Invisible God 입니다.
필립 얀시는 자신의 책이 '의심'이라는 메타포로 출발해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과정, 즉 하나님을 향한 순례의 길을 요약한 글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내가 '의심'에서 출발해 '믿음'으로 나아간 과정, 즉 하나님을 향한 순례의 길을 요약한 글이다." (p.7)
"의심은 믿음이라는 벽장의 뼈대와 같다.... 20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불신의 경험에 뿌리내리지 않은 신앙이 과연 신앙다운 신앙이 될 수 있을까?" (p.49)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전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그중 한명이라도 의심이라는 뼈대에서 믿음을 키워나가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지만 그런 경우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의심이라는 뼈대에서 시작해 신앙을 키워 나갔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그 뼈대는 사라지고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p.51)
둘째는, 제가 '성결교안에는' 교회안에는' '내안에는' 하나님이 없다라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을 때 가장 큰 포옹력으로 나같은 사람이 다시 '하나님으로 돌아오도록 도운'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필립 얀시는 토마스 머튼의 말을 비롯하여 다음과 같은 말들로 방황하고 신앙의 흔들림이 있던 나를 다시 '신으로' 인도하였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너무 쉽게 발견했다면 아마도 당신이 찾은 것은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p.31)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그 말씀에 끌리면서도 동시에 거부했다. 마치 자석과 가까워질수록 나침반의 바늘이 더 세게 흔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p.45)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확실함보다 신비 속에서 평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은 팔을 비틀고 구석으로 몰아붙이며 자신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분이 아니다." (p.55)
요즘 다시 목사가 되고 크리스챤이 되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 것이 필립 얀시의 말처럼 '나침반의 바늘'처럼 '세게 흔들림이 있는 시간'을 거쳐서 되어진 것 같습니다.
특별히 제가 꿈꾸고 생각하는 공동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필립 얀기가 언급하고 있는데 그런 교회가 바로 열방교회라고 믿습니다.
"나는 진리를 향한 순례의 여정 중에 은혜가 충만한 교회와 내 의심을 털어놓을 안전한 공간잉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발견했다.... 시카고 라살 스트리트 교회의 친구들이었다." (p.57)
그렇습니다. 필립 얀시는 남부지역 교회에서 하나님을 떠났다가 시카고의 '의심을 용납하는 공동체' 교회에 정착하면서 다시 신앙을 찾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더불어서 아내는 Social Worker 로 시카고지역의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을 섬겨가면서 더욱더 '살아계신 하나님'을 실존적으로 확인해 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공동체인 열방교회도 그런 '의심을 포옹하는 공동체'로 하나님께서 세워져가고 있습니다. 제 아내 역시 필립 얀시의 아내처럼 Social Worker 로 미국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캠든 카운티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해 가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두 책을 통해서 저처럼 (한 때) '신이 죽었다'라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분들이 '의심'이 '믿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고백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