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79I9xq8cwLU
예수님을 ‘끌고’ 다니지 말고 ‘지고’ 다닙시다!
(마가복음 15:1-47)
마가복음 16장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본문을 묵상하다가 참 마음이 아팠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끌고’ 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끌고’ 다니면서 심문도 하고, 침도 뱉고, 옷도 벗기고, 가시면류관도 씌우고 그러다가 골고다에 데리고 가서 십자가에 못받는 것이 아닙니까?
1)대제사장은 밤새 예수님을 심문하고 나서 새벽에 ‘끌고’ 빌라도에게 데리고 갑니다.
(막 15: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군인들은 예수를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끌고’ 갑니다.
(막 15: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3)군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빌라도 뜰에서 나갑니다.
(막 15: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4)군인들은 예수를 ‘끌고’ 골고다 언덕에 데리고 갑니다.
(막 15: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그렇게 마음 아파하는 제게 성령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전목사, 넌 예수님을 끌고 다녔냐, 아니면 모시고 다녔냐?”
휴우~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늘 모시고 다녔다고 장담할 수 없네요.
나의 목회철학을 이루기 위해, 아니면 목회에 대한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예수님을 ‘끌고’ 다니던 기억들이 떠올라서 너무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그때 참 귀한 인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끌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자들처럼 ‘모시고’ 다닌 것도 아닙니다. (제자들이 늘 그랬던 것은 아니구요)
아주 우연히 예루살렘에 방문했다가 ‘마침’ 예수님의 십자가를 ‘같이 지고’ 가게 된 것입니다.
(막 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오늘 하루 예수님을 ‘끌고’ 다니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에 예수님(의 십자가)을 ‘지고’ 다니려고 합니다.
골고다로 향하시는 예수님의 고난을 함께 나누어 지려고 합니다.
그렇게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님만 의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