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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죄책감’에 시달리지 맙시다! 예수님은 ‘죄’만 용서해 주신 것이 아니라, ‘죄값’도 배상하셨습니다!
(이사야 53:1-12)
마틴루터는 이사야 52:13-15, 53:1-12 말씀에 닉네임을 붙였습니다.
‘작은 복음’
존 맥아더 목사님은 작은 복음의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야 52:13-15, 53:1-12에는 하나님의 구원론, 사람의 인간론, 예수님의 기독론을 모두 담고 있는 작은복음서입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은 종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형통하였는데(사 52:13) 그것은 곧 요한복음 19장 30절의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종이 되셔서 낮아지셨고,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사 52:13)
베드로는 그의 책 베드로전서 2:19-24에서 예수님이 당한 고난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벧전 2:19-24) …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은 도무지 죄를 짓지 않았지만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속’ 하셨습니다.
저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사야 53장 10절 말씀이 레마로 다가왔습니다.
(사 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예수님의 죽음을 히브리서에서는 ‘속죄제’로(히 13:12)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에베소서에서는 ‘화목제’로(2:14-18)로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사야 53장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속건제’로 소개합니다.
모두 다 같은 의미이겠지만, 제사의 종류라는 측면을 볼 때 ‘속건제’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속죄제로 설명할 때는 ‘인간의 죄를 사해주셨다는’ 의미를 강조합니다.
화목죄로 설명할 때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점’을 강조합니다.
속건제로 설명할 때는 ‘죄용서 뿐만아니라 죄책감의 문제도 해결해 주심’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속건제를 영어로 Guilty Offering이라고 합니다.
이 제사는 2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죄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배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물건에 대한 죄를 지었으면, 물건에 대한 값을 치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 뿐만아니라 ‘죄값’의 문제도 해결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속죄제가 개인이나 단체의 죄를 위한 제사라면, 속건제는 개인적인 죄에 대한 제사입니다. 그래서 좀더 ‘개별적인 죄와 죄값’을 해결하는 의미로 생각되어집니다.
사랑하는 열방가족 여러분,
속죄제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화목제를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연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속건제를 통해 ‘죄값’도 치루어주신 예수님 때문에 ‘Guilty 죄책감’도 해결시켜 주셨습니다.
더 이상 사탄이 우리를 속이고 던져주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맙시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죄값을 ‘대속’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해방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롬 8:1-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Therefore, there is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because through Christ Jesus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set me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