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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ιαδήμα (디아데마) vs στέφανός (스테파노스)
(딤후 4:1-22)
디모데후서 4장은 바울의 유언장입니다.
유언의 내용은 디모데에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라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싸움’을 끝까지 싸우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나님의 선물을 말합니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은 이 ‘의의 면류관’이 자신과 디모데에게뿐만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곧 ‘믿음의 선한싸움을 끝까지 싸우는’ 모든 사람에게 주실 것임을 약속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면류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얼마나 그 면류관이 가치가 있고 귀한 것이기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끝까지 싸우라고 말하는 것일까?
헬라어 사전을 보면 면류관이라는 단어가 두 종류 있습니다.
첫째는, διαδήμα (디아데마) 라는 단어입니다.
이 면류관은 ‘왕관’을 의미합니다.
쉽게 설명하면서, 로마시대의 네로황제가 썼던 왕관을 생각하면 됩니다.
‘믿음의 선한싸움’을 싸우지 않고 얻어지는 면류관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στέφανός (스테파노스) 라는 단어입니다.
이 면류관은 ‘월계관’과 같은 의미입니다.
운동경기 또는 전쟁터에서 최선을 다하여 싸우고 결승점에 들어온 선수나 병사의 머리에 씌어주는 ‘원례관’입니다.
이 면류관은 ‘디아데마’ 왕관과 다릅니다.
‘왕관’이 세상이 주는 면류관, 로마황제가 주는 면류관, 썩을 면류관이라고 한다면…
‘월계관’은 하늘에서 주는 면류관,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 썩지않을 영원한 면류관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그리고 세상에서 목회를 하다보면 바보같이 ‘스테파노스’가 아니라 ‘디아데마’와 같은 왕관에 눈이 돌아가는 비참한 제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정말 추합니다.
정말 꼴불견입니다.
정말 절망스럽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성경 가운데 보내셔서 다시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으로 고개를 돌리게 하십니다.
큰 길이 아니라 좁은 길, 예루살렘 성이 아니라 골고다 언덕으로, 가진 자가 아니라 없는 자, 빼앗는 자가 아니라 빼앗긴 자, 억압하는 자가 아니라 억압당하는 자, 참사를 낸 자가 아니라 참사를 당한 자로 눈길이 마음길이 손길이 다가가도록 역사합니다!
저도 바울처럼 ‘믿음의 선한싸움’을 잘 마치고 싶습니다.
세상이 주는 ‘똥관’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쓰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남은 목회기간에 ‘의로운 일’ ‘공의로운 일’ ‘정의로운 일’에 복음을 외치고, 의를 지키는 목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