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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아웬’이 아니라, ‘벧엘’에서 삽시다!
(호세아 12:1-14)
호세아 12장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맺은 ‘벧엘의 약속’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기억하듯이 우리를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호 12: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호 12:5)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벧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형 에서를 피해 하란땅으로 도망칠 때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맺은 언약입니다.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겠다’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정말 아름다운 약속입니다.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가 호세아 10장에서 말씀하신 ‘벧아웬’의 아픔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벧엘’ ‘하나님의 집’을 두고, 북이스라엘의 죄로 말미암아 조롱하는 이름이 생겼는데 그 이름이 ‘벧아웬’입니다.
마치 오늘날로 말한다면, ‘기독교’라는 거룩한 이름을 세상사람들로부터 ‘개독교’라고 조롱을 받는 것과 같은 이름입니다.
얼마나 우상을 섬기고, 죄가운데 살고 있었던 북이스라엘이기에 ‘벧아웬’ 곧 ‘우상의 집’ ‘죄악의 집’이라고 멸시를 당합니까?
오늘 말씀의 제목을 정하면서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벧아웬’이 아니라 ‘벧엘’에서 삽시다!
벧아웬과 벧엘은 ‘다른 장소’가 아닙니다.
‘같은 장소’입니다.
벧엘 ‘하나님의 집’이 벧아웬 ‘우상의 집’으로 바뀐 것입니다.
요즘 한국교회가 점점 벧엘에서 벧아웬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님의 집’이 더이상 ‘우상의 집’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한국의 교회들이 벧아웬이 아니라 벧엘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열방교회가 벧아웬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고, 벧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가 되도록 붙잡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