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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고통은 3인칭이 아니라, 1인칭이다!’
(욥 6:1-30)
‘인간의 모든 고통은 3인칭이 아니라, 1인칭이다!’
(욥 6:1-30)
욥기 6장은 엘리바스의 4-5장에 대한 욥의 반론입니다.
엘리바스가 하나님의 징계는 복이다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욥은 복이 아니라 저주이다라고 반박합니다.
그러면서 욥은 친구들에게 섭섭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자신의 결백을 믿어주기는커녕 정죄하는 그들에게 자신의 의를 주장합니다.
욥기 6장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징계가 너무 무겁다고 하소연합니다. (1-7절)
둘째는, 징계가 너무 커서 죽고 싶고 그리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8-13절)
셋째는, 욥이 친구들에 대한 섭섭한 마음과 원망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14-23절)
넷째는, 욥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친구들에게 충고합니다. (24-30절)
제게 주신 레마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1)욥의 말이 왜 이토록 거치른 것일까?
안타깝게도 친구들은 욥의 ‘토설하는 기도’를 들으면서 ‘고통의 이유’ 보다 ‘거친 입’을 두고 비판합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말하는 것이 더 이상할텐데, 친구들은 욥의 고통을 1인칭으로 받지 않고 3인칭으로 받습니다.
욥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거치른 말로 자신의 결백을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2)욥은 자신의 언어가 거칠다는 것을 모를까요?
아닙니다. 압니다.
(욥 6:3)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새번역) 틀림없이, 바다의 모래보다 더 무거울 것이니, 내 말이 거칠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3)욥의 거칠은 말에는 분노가 실려 있습니다. 그 분노는 3가지 방향으로 향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로 향해 있습니다. (1-7장)
->고난의 제공자가 하나님이시다!
->죄없는 자를 심판하신다!
둘째는, 친구들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14-33장)
->친구들은 공감하는 말을 못해준다!
->자신의 결백을 의심한다!
셋째는, 자신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1-13장)
4)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예수님이 아닙니다. 인간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바로 교회와 교인들입니다.
해결방안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John Stott는 ‘교회 교인이야기 하지 말고, 오직 예수이야기만 하자!’
둘째는, Ronald Sider는 ‘교회를 갱신하자!’ 아무리 예수 이야기를 하더라도 교회와 교인이 갱신되지 않으면 결국 예수 이야기는 망가진다!
저는 전자도 맞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후자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5)욥은 자신의 말이 거칠다는 것을 모를까요?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과 독대할 때 이런 두가지 고백을 합니다.
첫째는,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욥 40:5)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둘째는, 제가 말을 함부로 했습니다.
(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6)하나님은 욥의 고백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하나님은 엘리바스가 아니라 욥의 이야기에 손을 들어줍니다.
(욥 42: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오늘따라 욥기를 강해하면서 차준희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탄원시’와 ‘토설하는 기도’!
이 깨달음을 주신 차준희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차준희교수님의 말대로 까닭없는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께 토설하고, 사람에게 토설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향하여 너무 많이 말을 하더라도, 함부로 말하더라도 저의 고통을 3인칭이 아니라 1인칭으로 이해해주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 제가 미친사람처럼 울부짖고, 함부로 토설하더라도 저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사랑하는 열방가족 여러분, 우리가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 고통의 크기와 끝을 모르는 고통이 아닐까요?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아무리 크고, 끝을 모르는 고통이더라도 ‘하나님을 신뢰’ 하시면 능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1/6(금) ‘새벽이슬 말씀’의 짧은 퀴즈를 보내드립니다.
오늘은 욥기 6장 말씀입니다.
‘영상과 글’을 꼭 보시고 퀴즈를 풀면 말씀에 더 큰 유익이 있습니다.
정답이 ‘아닌’ 것이 무엇입니까?
1)욥은 고통이 너무 심해서 하나님께 거칠게 말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건트롤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상황 때문에 정상적인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2)하나님은 거칠게 말하는 욥을 보면서 비판하는 엘리바스가 아니라 고통이 너무 심해 함부로 토설하는 욥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3)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존재가 아니라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공감해 주지 못하는 교회와 교인들입니다.
4)인간의 모든 고통은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객관화시켜서 보는 것이 크리스챤의 자세입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내 주위에 고통으로 인하여 토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들의 탄원을 어떤 자세로 바라보십니까?
1인칭 고통으로 공감하십니까? 3인칭 고통으로 방관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