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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처럼 망하고, ‘꿈’처럼 사라져도, ‘도’를 지키는 목사(크리스챤)!
(욥 20:1-29)
욥기 20장은 소발이 욥의 발언에 대하여 반박하는 이야기입니다.
욥기 19장의 욥의 발언, 곧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말을 듣고 소발은 안절부절합니다.
(욥 20:1-2)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므로 내 초조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나니 이는 내 중심이 조급함이니라
욥은 엘리바스나 빌닷처럼 욥기 1-2장과 42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욥이 당한 고난을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지혜’ ‘자신의 지식’으로 욥을 정죄합니다.
제게 주신 레마의 말씀은 5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욥 20:5-6)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그 존귀함이 하늘에 닿고 그 머리가 구름에 미칠지라도
(욥 20:7-8)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하리라 그는 꿈 같이 지나가니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요 밤에 보이는 환상처럼 사라지리라
소발은 욥을 이미 ‘악인’으로 규정하고, 욕이 악인으로서 받아야 할 저주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 대표적인 저주가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은 잠시’이고, ‘즐거움도 잠깐’이라고 하면서 ‘똥’처럼 망할 것이고, ‘꿈’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정죄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똥’에 대해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욥의 상황을 세상의 지혜로 판단하고 분석하고 싶었으면 ‘친구’에게 ‘똥 이야기’로 거칠게 비난하려고 하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욥이 악을 저지르지 않고서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정말 그런 비난이 안타깝지만, 혹 그 어떤 친구가 악을 행하여서 고난을 받는 것을 본다고 할지라도 ‘똥처럼’ ‘꿈처럼’ 사라지고 망할 것이라고 저주하는 것은 친구로서 부적합한 말이 아닐까요?
구약성경에서 똥은 부정한 것 중의 부정한 것이고, 저주중의 저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번제로 제물을 통째로 태워 하나님께 드릴 때에도 똥은 부정한 것이기에 그 제물의 똥은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에서만 불사르게 하였습니다. (레4:12)
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부정한 것과 더불어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백성들을 향하여 심판하실 때 ‘자손들의 얼굴에 똥을 바르겠다고' 협박하셨습니다. (말 2:3)
그만큼 똥으로 정직하고 깨끗한 욥의 상황을 판단하는 소발의 발언은 ‘하나님의 지혜’를 모르는 ‘세상의 지혜’로 큰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묵상을 하다가 ‘세상의 지혜’를 똥으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심지어 해로 여겨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십자가의 도’를 사랑하고, 지키고, 따라갔던 바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빌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아멘!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생긴 이후에 그 외 모든 세상의 지식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똥으로 여깁니다!
이제까지는 율법에서 난 의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안 후에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붙잡습니다!
마치 욥의 친구들이 ‘신명기 28장’의 인과응보라는 율법으로 욥의 처지를 ‘정죄’ 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욥기는 이런 진리를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율법으로는 그 누구도 의롭게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통하여 의로와질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는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비교합니다.
자기 지혜, 곧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십자가의 도’ ‘예수 그리스도의 도’임을 선포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 말씀은 욥기 전체를 꿰뚫고 있는 진리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사랑하는 열방가족 여러분,
혹시 소발처럼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지혜’를 해석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즉시 중단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갑시다!
십자가의 도,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뜻’으로 나아갑시다!
우리가 지금까지 의지하였던 ‘세상의 지혜는 바울처럼 과감하게 ‘똥으로’ 여기고, 해로 여기고 버립시다!
그렇게 될 때 현재 욥이 당하고 있는 고난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갖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에게 닥친 고난’의 진의를,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똥처럼 꿈처럼 사라질 것은 버리고, 십자가의 도를 붙잡고 끝까지 모든 고난을 이겨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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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금) ‘새벽이슬 말씀’의 짧은 퀴즈를 보내드립니다.
오늘은 욥기 20장 말씀입니다.
‘영상과 글’을 꼭 보시고 퀴즈를 풀면 말씀에 더 큰 유익이 있습니다.
정답이 ‘아닌’ 것이 무엇입니까?
1)욥기 20장은 소발이 두번째로 욥을 악인이라고 정죄하면서 저주하는 이야기입니다.
2)소발이 욥이 악인이기에 ‘똥처럼’ 망하고 ‘꿈처럼’ 사라질 존재라고 저주합니다.
3)바울은 자신에게 유익한 ‘세상의 지혜’ 위에 ‘하나님의 지혜’를 더하여서 큰 지혜자가 되었습니다.
4)고린도전서 1:25에 보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다’라고 말합니다. 나의 상황이 욥처럼 고난중에 있으십니까? ‘세상의 지혜’는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혜’ ‘십자가의 도’를 붙잡는 것이 문제해결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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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나는 바울처럼 세상의 지혜를 배설물로 여기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사람입니까?
문제를 만났을 때 무엇을 의지합니까?
나의 지식, 경험이 토대가 된 ‘세상의 지혜’입니까?
아니면 성경, 기도가 토대가 된 ‘하나님의 지혜’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