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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3:10의 誤譯 과 定譯, '단련한 후에 정금같이 나온다’ vs '시험(Test) 해봐라 처음부터 순금이다'
(욥 23:1-17)
욥기 23장은 엘리바스의 반박에 대한 욥의 재반박으로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결백을 입증할 분은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자신을 외면하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제게 주신 레마의 말씀은 그 유명한 23장 10절 말씀입니다.
(개역개정)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오늘 새벽에도 이 말씀을 읽으면서 고난의 무게가 가벼워집니다.
고난의 고통이 가벼워집니다.
이 연단의 시간 뒤에 주어질 ‘정금’ 같은 믿음을 기대하며 하나님께 메달립니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이대로 은혜를 받는 구절로,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노래가사로, 나의 고난의 길의 친구로만 이 성경구절을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개역개정의 번역은 誤譯(오역)에 가깝습니다.
새번역성경이나 공동번역성경을 NIV 성경과 함께 보십시오. 이것이 더 定譯(정역)에 가깝습니다.
개역개정의 번역으로보면 그 의미는 로마서 5장 3-4절처럼 느껴지지만, 새번역의 번역으로보면 그 의미는 욥의 교만입니다.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Not only so, but we also rejoice in our sufferings, because we know that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NIV) 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새번역) 나를 시험해 보시면 내게 흠이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으련만!
(공동번역) 털고 또 털어도 나는 순금처럼 깨끗하리라.
NIV 성경에서 ‘단련하신 후에’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test’입니다.
새번역성경처럼 ‘나를 시험해 보면’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공동번역처럼 ‘털고 또 털어도’도 훨씬 더 원문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엘리바스의 말에 화가나도, 욥이 하나님에게 이토록 당당하게 ‘의롭다’고 말할 처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교만입니다!
욥기 23장의 문맥을 보면 그의 교만을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욥 23: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욥 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욥은 자신의 걸음이 바르고, 그의 길이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다고 자랑합니다.
빌닷의 욥기 8장 7절 정도는 아니지만, 욥기 23:10 말씀도 문맥을 따져가면서 해석하지 않으면 은혜를 받을지언정, 성경의 바른 뜻을 전달하지도, 전달받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의롭게 여김을 받은 사람’은 욥처럼 많이 있지만, ‘의로우신 분은 오직 예수’ 뿐입니다!
(롬 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우리가 의롭게 여기을 받는 길이 무엇입니까?
환난중에 낙심하지 않을 힘이 무엇입니까?
‘내 자신’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엡 3:12-13)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오늘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혹시 더 헷갈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1)즐겨부르던 찬양은 그 찬양가사대로 부르십시오.
2)다만 욥의 고백은 교만한 것이기에, 좀 분별하여 부르면 좋겠습니다.
3)의로운 분, 정금같은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4)우리는 오직 예수님 때문에 ‘의롭게 여김을 받는’ 존재이고,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5)간혹 욥처럼 엘리바스 앞에서 결백함을 증명하려다가 이렇게 잘못된 고백을 하게 되는 우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6)항상 깨어서 나를 변론하려다가 그 변론에 넘어지지 않도록, 오직 성경말씀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든 열방식구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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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새벽이슬 말씀’의 짧은 퀴즈를 보내드립니다.
오늘은 욥기 23장 말씀입니다.
‘영상과 글’을 꼭 보시고 퀴즈를 풀면 말씀에 더 큰 유익이 있습니다.
정답이 ‘아닌’ 것이 무엇입니까?
1)욥기 23장은 엘리바스의 반박에 대한 욥의 재반박으로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2)욥은 21장 10절의 바른 해석은 '단련한 후에 정금같이 나온다’가 아니라 '시험(Test) 해봐라 처음부터 순금이다'입니다. 욥의 교만을 볼 수 있는 성경구절입니다.
3)욥은 ‘의롭게 여김을 받은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인 의로움을 가진 존재’입니다.
4)로마서 3:10-12을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절대적인 의로움을 가진 존재’는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그외는 모두 ‘의롭게 여김을 받은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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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우리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단련시키기 위함이고, 그 후에 우리가 정금같이 나옴을 믿습니까?
우리가 환난을 받을 때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환난은 무엇을 이룹니까?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