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rfqX8DEFmjc
(욥 39:1-30)
욥기 39장 말씀은 38장 말씀처럼 ‘창조의 신비’를 통한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합니다.
다만 차이가 있는 것은, 38장은 자연 만물을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하였다면, 39장은 야생동물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각 야생동물에게 준 ‘본능적인 지혜’에 대해서 이곳에 다 기록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왜 하나님은 39장 전체에 야생동물들 이야기를 적으셨는지, 그리고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야생동물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인간의 필요에 순응하지 않고, 인간의 질서 밖에 존재하는 동물을 말합니다.
상대적인 개념은 ‘가축’일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야생동물의 이야기를 욥에게 하셨을까요?
인간은 야생의 세계에 대하여 무지하고 무력하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보여주면서, 고난도 인간이 다룰 수 없는 대상이지만, 그 고난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듯이, 욥의 고난도 하나님의 수중 안에 있음을 말하고자 합니다.
야생동물을 길들이시는 하나님께서, 야생고난을 길들이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난이란 무엇입니까?
앨리스터 맥그래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인이 고난을 이처럼 껄끄러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고난의 존재가 인간 성취의 한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고난은 정복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인간 문명이 이토록 진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고난은 정복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야생고난입니다.
사랑하는 열방가족 여러분,
고난은 인간이 정복하여 길들일 수 없는 야생동물과 같습니다.
그냥 고난도 있겠지만, 야생고난과 같은 고난이 우리를 하루에도 수차례 찾아오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지진보고를 보면 하루가 다르게, 시간마다 사망자의 숫자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2,500명 사망자의 숫자는 이제 7천명을 넘더니 WHO 보고에 따르면 최대 2만명의 사망자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정말 인간이 길들일 수 없는 ‘야생고난’입니다.
나의 고난도 힘들지만, 이슬람 국가인 튀르키에의 야생고난을 보면서 하나님께 튀르키예 무슬림 국민들을 보호해 달라고, 위로해 달라고 기도하는 하루를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8(수) ‘새벽이슬 말씀’의 짧은 퀴즈를 보내드립니다.
오늘은 욥기 39장 말씀입니다.
‘영상과 글’을 꼭 보시고 퀴즈를 풀면 말씀에 더 큰 유익이 있습니다.
정답이 ‘아닌’ 것이 무엇입니까?
1) 욥기 39장 말씀은 38장 말씀처럼 ‘창조의 신비’를 통한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합니다.다만 차이가 있는 것은, 38장은 자연 만물을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하였다면, 39장은 야생동물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2)야생동물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유는 인간의 필요에 순응하지 않고, 인간의 질서 밖에 존재하는 야생동물을 하나님께서 길들이듯이, 인간의 능력 밖에 있는 야생고난 역시 하나님의 손안에 다스림을 받고 있음을 알게하기 위함입니다.
3)엘리스터 멕그래스의 말에 따르면, 고난은 반드시 사람이 정복할 수 있으며, 길들일 수 있는 대상이기에 인간의 문명이 점점 진보할수록 고난의 문제는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4)나의 고난도 무척 힘들고 아프지만, 지진과 같은 야생고난으로 인하여 2만여명의 사망자도 내다보는 이슬람국가 튀르키예를 위하여 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개인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내가 길들일 수 없는 고난으로 인하여 고통중에 있습니까?
이럴 때 크리스챤이 가져야 할 신앙자세는 무엇입니까?
튀르키에의 지진으로 인하여 죽어가는 무슬림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