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gV9J_K0Ps4E
(삼하 13:30-39)
사무엘하 13장 30-39절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는 이야기이고, 둘째는 압살롬이 그술로 도망치는 이야기입니다.
제게 주신 레마의 메시지는 ‘마음 아픔’입니다.
첫째는, 교활한 요나답에 놀아나는 암논과 다윗의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프고,
둘째는, 다윗의 과거의 죄가 현재의 비극을 낳고, 현재의 비극이 또 미래에 겪을 비극의 토대가 될 것을 생각하면 또 마음이 아프고,
셋째는,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는 합한 사람이었는지는 몰라도, 자녀들에게는 업신여김을 당하는 아버지여것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1)요나답이 어떤 인물입니까? 암논이 다말을 겁탈하도록 유혹하던 인물입니다. 암논은 욕정에 눈이 먼 인물이지만, 요나답은 다말을 겁탈하면, 압살롬으로부터 암논이 살해당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을까요?
자신의 여동생 디나가 세겜사람들에게 더럽혀지자, 그의 형제들이었던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사람을 모두 살해한 사건을 분명히 요나답은 알지 않았을가요?
더우기 암논 한명이 죽든, 모든 아들들이 죽든, 그 고통은 모두 같은 것인데, 위로랍시고 다윗에게 ‘다른 아들들은 죽지 않았습니다’라고 보고할 자격이 있는 인물입니까?
암논과 다윗도 문제이지만, 이런 요나답으로 인하여 한 가족이 처절하게 망해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2)다윗이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르고나서 거의 일년이 되도록 다윗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죄를 지적할 때 그제서야 죄를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이렇게까지 영적으로 무지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왕에 오른 이후로 욕망도 억제하지 못하고, 사리도 판단 못하고, 더우기 현재의 자신의 결정이 어떻게 미래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다.
암논의 비극, 다말의 고통, 압살롬의 살인 모두 다윗이 그때 그때 죄를 지적해주고, 아픔을 싸매주고, 죄의 책임을 공정하게 사랑으로 물었더라면, 현재의 살인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미래의 도망도 없었을 것입니다.
3)어떻게 아버지 앞에서 여동생을 겁탈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형을 살해할 수 있습니까?
이복동생이고, 이복형이었기 때문이라구요? 그건 정말 핑게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나단 선지자에게 이런 일들이 다윗 가문에 일어날 것을 경고하셨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그로인하여 예방할 수 있었던 비극을 키우게 된 꼴이 되었습니다.
(삼하 12: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왜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합한 다윗에게 이런 경고를 할 수 있었습니까?
다윗의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의 죄를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겼다!
(삼하 12: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둘째는, 하나님을 업신여겼다!
(삼하 12: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업신여기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왕’이 되자, 후대의 자녀들에게 큰 비극을 주는 아버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자녀들에게 개무시당하는 아버지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들의 결말이 비극적일 것이라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다윗에게 가르쳐 주셨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던 홉니와 비느하스를 잘 책망하지 않았던 엘리제사장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두 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제 인생을 돌아봅니다.
난 과연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었는가?
난 자녀들에게 어떤 아버지인가?
우리 가정과 교회에는 요나답같은 교활한 인간이 함께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현재가 자녀들의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한가지 분명한 다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자!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자!
그렇게 하겠다는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이고, 두번째 이유는, 나의 자녀들에게 개무시 당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성령님 귀한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제가 하나님을 잘 존중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오늘 하나님의 말씀처럼 소자를 업신 여기지 않게 하시고(마 18:10), 늙은 어미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시고(잠 23:22), 형제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시고(롬 14:10),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욥 5:17)
*묵상노트에 인터넷 용어인 ‘개무시’를 사용해서 죄송합니다. 너무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서 그 단어 말고는 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양해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