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4:12-24)
사무엘하 14장 12절부터 24절까지의 이야기는 드고아의 여인의 비유가 요압의 술수를 알아차리는 다윗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윗과 압살롬은 요압의 술수대로 ‘공의’가 빠진 ‘사랑’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3년만에 그술에서 예루살렘으로, 타지에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압살롬은 다윗의 거부로 얼굴을 2년 동안 독대하지 못합니다.
압살롬은 요압을 협박하여 결국 아버지 다윗과 입맞춤을 하게 되지만, 이 입맞춤은 마치 어떤 영화의 제목처럼 ‘죽음의 키스’가 되어버렸습니다.
압살롬은 15장부터 다윗을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올라설 계략을 꾸미게 되고, 더나아가 다윗을 죽이려는 행동이 시작됩니다.
왜 이런 비극이 다윗의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시작되었습니까?
그것은 ‘공의없는 사랑’ 입맞춤’ 때문입니다.
다윗은 5년만에 만난 압살롬과 입맞춤을 하지만, 뜨거운 눈물이나, 격한 포옹이 없습니다. 그냥 입만 맞춥니다.
(14:33)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다윗과 압살롬과의 입맞춤을 생각하다가 누가복음 15장의 아버지와 탕자와의 입맞춤과 마태복음 26장의 예수와 가롯유다의 입맞춤이 떠올랐습니다.
1)탕자는 자신의 죄를 뉘우칩니다.
뉘우치기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서 아버지에게 달려가 용서를 구합니다.
그런 그를 아버지는 측은히 여겨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눅 15:17-20a)
그때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런 고백을 합니다.
(눅 15: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회개입니다.
공의입니다.
그 공의는 사랑으로 놀랍게 승화됩니다!
2)가롯유다는 칼과 몽치를 들고 예수를 잡으려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랐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께 다가가서 입맞춤을 합니다.
그의 입맞춤은 군사들에게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싸인이었습니다.
(마 26: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마 26: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회개없는 입맞춤의 결과가 비참합니다.
회개없는 사랑은 '죽음의 키스'입니다.
유다는 은을 성소에 던지고 스스로 목매 자살했습니다. (마 27:5)
압살롬은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였던 요압의 칼에 의해서 심장이 찔려 죽습니다. (삼하 18:14)
예수님은 이런 무시무시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검을 주러 왔다’ (마 10:34)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합당하지 않다!’
전목사의 표현으로는 이러합니다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은 곧 우상이며, 그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죽습니다!’
(마 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사랑하는 열방가족 여러분,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입니다.
우리들은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자녀들에게 어떤 입맞춤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탕자와 아버지와같은 공의가 살아있는 '사랑의 입맞춤'을 자녀들과 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압살롬과 다윗과같이 공의가 없는 '죽음의 입맞춤'을 자녀들과 하기를 원하십니까?
공의가 빠진 사랑으로 자녀들을 죽음으로 몰아가지 맙시다!
공의가 있는 사랑으로 자녀들을 훈계하여 음부처럼 타락해가는 이 세상에서 자녀들의 영혼을 구원해가는 모든 열방의 부모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