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3:1-18)
예레미야애가의 영어제목은 Lamentation 입니다.
Lament라는 단어의 뜻은 애통하다, 한탄하다, 통탄하다입니다.
예레미야애가는 ‘눈물의 시’ ‘애통의 시’ ‘통탄의 시’입니다.
이런 시가 또 있습니다. 욥기서입니다.
욥기서에도 고통과 한탄과 통탄의 시로 적혀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예레미야애가는 민족의 슬픔을 이야기한다면, 욥기는 개인의 슬픔을 이야기하고, 예레미야애가가 죄로 인한 고통을 주제로 다루었다면, 욥기는 의인도 고통을 당할 수 있음을, 그래서 귀로만 듣더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오늘 묵상본문인 예레미야애가 3:1-18의 말씀은 예레미야가 유다의 고난 곧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전에 두고 ‘여호와의 분노의 매’가 예루살렘을 치신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치셨다고 고백하면서, 나라와 민족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애 3:1)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붙잡고 깊이 묵상하다보면, 유다를 품은 예레미야를 넘어, 사람을 품은 예수님의 고난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를 치시는도다’ (3절)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셨고’ (4절)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6절)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들을 막으사’ (9절)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적막하게 하셨도다’ (11절)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14절)
‘나를 쓴 거슬로 배불리시고’ (15절)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18절)
정말 한 구절, 한 구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예레미야애가 3장 1절에서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를 영어성경으로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I am the man” 내가 그 사람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내가 그 길이다, 내가 그 진리다, 내가 그 생명이다!
오늘 참 행복합니다.
구약속에 숨겨져 있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나니 너무 흥분됩니다.
결국 3:1의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라고 자기를 소개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때, 히브리서 2장 18절 말씀이 떠오릅니다.
(히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통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받으들여서 기도하고,
예수님은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기셔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고통을 능히 예수님께서 맡아 주실 줄 믿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이런 질문속애서 이렇게 살려고 합니다.
1)나는 나라와 민족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삼고 있습니까?
하나님, 대한민국의 고통, 미국의 고통, 온 열방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게 해 주십시오.
2)나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고통’을 날마다 묵상하며 살고 있는가?
하나님,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3)나는 지금 당하는 ‘나의 고통’을 능히 예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는가?
하나님, 시험을 받아 고통을 당하셨던 ‘예수님’께서 능히 나의 고통을 능히 도와주실 술 믿고 오늘 하루 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