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4rgXypezWhw
'웅성이'와 '구덩이' 그리고 '예수님'
(예레미야애가 3:55-66)
예레미야는 자신이 ‘심히 깊은 구덩이’에 갇혀서 주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합니다. (55절)
그렇게 주의 이름을 부른 이유는 ‘주께서 자신의 음성을 듣고’ 또 ‘귀를 기울여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56절)
그리고 더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이런 말씀을 예레미야에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애 3:57 )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가?
구덩이에 빠져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만한 근거가 무엇인가?
성령님께서는 두 가지 말씀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첫번째는 요셉이 웅덩이에 빠졌을 때 주셨던 말씀으로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입니다.
(창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창 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히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요셉이 웅덩이에 빠졌어도 쫄지 않았던 이유는 ‘그곳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웅덩이에 빠지지 않으면 좋겠지만, 웅덩이에 빠지는 일이 있더라도 크게 염려할 것이 없는 것은, 그 웅덩이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히 은혜를 받게 될 것이고, 범사에 형통할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빠졌을 때도 그러하였습니다.
애초에 사자굴에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사자굴에 있더라도 쫄지 않아도 되는 것은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면 두려워할 것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다윗이 웅덩이에 빠졌을 때 주셨던 말씀으로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다 할지라도 ‘끌어 올리시고, 발을 반석 위에 두시고, 걸음을 견고하게 하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찬양가사를 생각해 보면, 그냥 끌어 올려져서 안도하는 정도가 아니라 ‘새노래를 부르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주시고 나의 발을 반석위에 세우시사 나를 튼튼히 하셨네 새 노래로 부르자. 랄라라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새 노래로 부르자. 하나님 사랑을!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다니엘처럼 다윗처럼 구덩이에 또 웅덩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구덩이와 웅덩이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깊은 구덩이와 웅덩이에 빠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새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구덩이와 웅덩이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크게는 같은 의미이지만 미묘한 구분은 있습니다.
구덩이와 웅덩이는 둘 다 우묵하게 패인 땅을 말합니다. 그런데 구덩이는 주로 ‘사람이 의도적으로 파놓은 것’을 염두에 두고 사용하는 때가 많습니다. 반면 웅덩이는 움푹 패여 물이 고여있는 땅으로 주로 물과 결합되어 쓰이는데 ‘자연적으로 생긴 것’을 염두에 두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보면 ‘자연적으로 생긴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고, ‘사람이 의도적으로 파놓은 구덩이’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새노래를 부르며 여유있게 웅덩이에서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게 될 것입니다.
지난주 주일설교 암송구절이 떠오릅니다.
(히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도 가롯유다에 의해서 구덩이에 빠지시고, 베드로에 의해서 웅덩이에 빠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덩이에 웅덩이에 빠졌을 때,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새노래를 부르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