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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essage Calls for a Decision
‘메시지’는 ‘결정’을 요구합니다!
(행 4:13-22)
베드로와 요한이 솔로몬행각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학문 없는 범인’들의 메시지를 목격하면서 이상히 여겼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어떻게 자신들이 복음에 능통한 자가 되었는지를 ‘성령충만’으로 설명합니다.
(행 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공회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더이상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것을 금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부정하고 돈으로 병사를 매수하여 부활사건을 조작했던 그들에게 ‘예수의 이름’은 늘 부담스러운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부활신앙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기사를 베푸는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채찍을 때리고, 감옥에 가두어 능욕을 주었습니다.
(행 4: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의 태도에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선언합니다.
복음을 듣고 보고 체험한 제자들이 ‘메시지’가 요구하는 ‘결정’에 따라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공회원의 말’을 듣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로 결정합니다! (19-20절)
사도들은 왜 ‘복음’에 대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5장 40-41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행 5:40-41)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사도들은 감옥에서 채찍질을 당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는 조건으로 놓임을 받을 때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는 것에 대하여 ‘기뻐하면서’ 공회를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열방가족 여러분, 우리는 복음의 메시지의 요구에 어떠한 결정을 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있습니까?
예수의 이름 때문에 어떤 능욕을 받더라도 이것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징표로 합당하게 여기고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세상에 나가 살면서도 예수의 이름 때문에 능욕받는 일도 없고, 핍박받는 일도 없고, 손해보는 일도 없다면 우리 각자의 신앙을 첵엎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가 내게도 일어나서 예수의 이름 때문에 세상에서 능욕받는 일이 있게 해 주세요!”
“사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고,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해 주십시오!”
특별히 엘살바도르로 선교를 떠나느 열방가족 여러분, 떠나기 전에 성령충만함을 받아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고, 그 이유로 능욕받는 일이 있을 때 기쁨으로 여기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함께 열심히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