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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LB0pzM8nUG4&ab_channel=AllNationsChurch
Power in Discernment!
'사랑하는 사람'의 '나쁜충고'를 듣지 말아라!
(사도행전 21:1-14)
오늘 설교의 영어제목이 Power In Discernment 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목회를 하다보면 영적분별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고 있고, 목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모두 ‘영적분별력’에 탁월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인지, 또는 사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인지를 분별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설교의 한국어 제목은 ‘사랑하는 사람의 나쁜충고를 듣지 말아라!’입니다.
다른 말로는 ‘사랑하는 배우자/가족/성도’일지라도 분별력없는 권면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반드시 ‘나쁜충고’일 것이고, 그런 권면은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1,2,3차 전도여행을 다 마치고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 속도가 꽤 빠릅니다. 밀레도에서 두로에 올 때까지의 시간, 그리고 두로에서 다시 가이사랴로 이동하는 시간을 볼 때 바울은 예루살렘에 빨리 올라가고자 하는 의지가 뚜렷합니다.
그런데 두로에서 그리고 가이사랴에서 만난 제자들이 바울의 길을 두고 ‘나쁜충고’를 합니다.
(행 21: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행 21: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가지 말라는 이유는 이러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그곳에서 ‘결박 당하여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나쁜충고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행 21: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저는 바울의 선언을 통해Power in Discernment! 영적분별력의 힘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열방가족 여러분, 크리스챤의 영적분별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세상적 상식이 아닙니다.
자기의 소원이나 야망도 아닙니다.
그 기준은 오직 한가지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예수를 위하여’ 야만 합니다!
‘예수를 위하여’ 결정 되는 모든 일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일 것이고, ‘예수를 위하여’ 하는 결정이 아니면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입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어 1,2,3차 전도여행을 다니고, 그곳에서 수많은 능욕과 핍박과 고난을 받았던 이유는 딱 한가지였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사울을 예수님께서 다메섹도상에서 부르실 때 그 이유가 떠오릅니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행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예수님이 사울을 바울로 부르신 이유는 단 한가지 ‘내 이름을 위하여’ ‘예수를 위하여’입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가는 사람들에게 꼭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소명받았어?’
이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위하여 살아갈 각오가 되어 있어?’입니다.
예수님에게도 사랑하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의 한사람이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나를 누구냐라고 질문했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하여 예수님에게 천국의 열쇄를 받는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최초로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길을 말씀하시자 예수님의 길을 막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랑하는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베드로는 영적분별의 기준을 놓쳤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고, 무엇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는가에 대한 이유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였지만, 예수님에게는 나쁜충고를 하는 제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심하다할 정도로 책망하신 후에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
(마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른 사람들에게 반드시 상급이 있음을 약속하셨습니다.
열방교회 목회 23년을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온전히 ‘예수를 위하여’ 목회했는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예수를 위하여’ 분별하여 판단하였는가?
한가지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습니다.
몇차례 다른교회로부터 담임목사 청빙을 받은 적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적기준으로보면 열방교회보다 더 나아보이는 교회들이었습니다. 그때 아내와 자녀들과 가진 가족회의에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던 영적분별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아빠, 열방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데?”
고등학교 다니던 아들 겨레가 말하는 음성이 꼭 성령의 음성처럼 들렸었습니다.
‘아빠, 예수님을 위해서 교회를 떠나는거야?’
기준이 명확하면, 결정도 명확하고, 순종도 명확해집니다.
‘예수를 위하여’ 내린 결정에는 항상 예수님의 보상이 있습니다. 상급이 있습니다. 복이 있습니다.
열방교회에 목회하면서 저는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 중의 가장 큰 복은 아들 겨레가 열방교회에서 영적으로 자랄 수 있었고, 목사가 되어 ‘예수를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열방가족 여러분, ‘예수를 위하여’ 살아갑시다.
‘예수를 위해’ 돈을 벌고, 자녀를 키우고, 교회를 섬깁시다!
어떤 결정을 해야할까 고민될 때 Power in Discernment! 곧 ‘예수를 위하여’를 잊지 마십시오!
결코 후회없는 인생/목회가 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