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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vDSUnhMRJvE&ab_channel=AllNationsChurch
당신의 그리스도 이야기 전하는 방법을 바울처럼 효과적으로 바꾸라!
(사도행전 22:1-16)
사도행전 22장은 바울의 변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유대인들로부터 고난을 받기 시작하는 가운데서도 ‘변명’이라는 방법을 통해 ‘전도’의 기회로 활용하는 바울의 모습에서 많은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제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받은 ‘바울의 효과적인 전도방법’ 3가지입니다.
첫째,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 이야기를 전할 때 ‘공감능력’이 뛰어납니다.
둘째,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 이야기를 전할 때 ‘긴장감’을 활용합니다.
셋째,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 이야기를 전할 때 ‘나의 이야기’를 사용합니다.
1)바울은 전도(변명) 할 때 유대인들을 ‘부형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영어로는 Brothers and Fathers라는 발로 ‘형제들이여, 아비지들이여’라는 친근감을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 사용합니다.
(행 22: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그런데 사실 이 호칭의 사용권은 순교자 스데반에게 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살해하는 유대인들에게 ‘부형들아’라는 호칭으로 ‘공감능력’ 활용에 탁월하였습니다.
(행 7: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사실 이런 호칭사용은 방법적 측면이라기 보다는, 바울의 유대인을 향한 측은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의 자연스러운 표출이라 생각됩니다.
2)바울은 ‘부형들아’ 부른 후에, ‘지금 들으라’라는 말로 ‘긴장감’을 늦추지지 않습니다.
(행 22: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들으라’는 헬라어는 아쿠오입니다. 아쿠오의 뜻은 ‘경청하라’이며, 시제는 일회적입니다.
‘지금, (일회적으로) 경청하라!’는 의미는 ‘다시 이 말을 들을 수 없으니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이야기를 전할 때 듣는 유대인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듣도록 유도합니다.
3)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 이야기를 전할 때 ‘다메섹도상에 찾아오신 예수의 이야기’를 3번이나 인용하여 ‘자기의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의 예수 체험 이야기는 사도행전 9장, 22장, 2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9장은 사건현장으로, 22장은 유대인들 앞에서, 26장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증언한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9장보다는 22장에서, 22장에서보다는 26장에서 더 ‘주관적인 체험’을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9장에서는 단지 ‘빛’이 바울을 들러 비추었다면, 22장에서는 ‘큰 빛’이 둘러 비추고, 26장에서는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자신뿐만아니라 ‘동행들’을 둘러 비추었다고 말합니다.
개인적 체험에서 시작해서 공통체적 체험으로 확장해 가는 바울의 이야기와 그러면서도 더 주관적/개인적 깊은 체험으로 증언하는 바울에게서 훨씬 더 감동적인 반응을 유발하게 됩니다.
한국의 지하철에서 외치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결단코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얼마나 복음에 대한 긴박감을 가지고 나와서 그토록 외치는 것일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다만 ‘개인이 경험한 그리스도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전달한다고 할 때’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 집단의 공감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바울의 전도방법을 좀 더 생각하고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열방식구 여러분,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지 ‘삶의 모든 것이 바울처럼 전도가 되고 증거가 되는’ 귀한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