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_1igNJskoc8&ab_channel=AllNationsChurch
‘겉사람’을 꾸미지 말고 ‘속사람’을 꾸미며 삽시다!
(사도행전 25:13-27)
베스도 총독에게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문안하러 방문합니다.
그때 베스도 총독은 벨릭스나 빌라도 총독과 다르게 아그립바와 버니게를 맞이합니다.
베스도는 그는 어떤 인물이고, 아그립바와 버니게는 어떤 인물입니까?
1.베스도총독입니다.
빌라도처럼 바울의 무죄를 말하는데 비굴하지 않습니다.
벨릭스처럼 바울의 무죄를 말하는데 시간을 끌지 않습니다.
그런데 베스도에게도 큰 약점이 발견됩니다.
바울을 위해 신속하게 로마행을 추진하는 것 같지만, 사실 불필요하게 로마시민권자인 바울을 두고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에게까지 재판을 오픈하여 바울의 로마행을 늦춥니다.
아주 겸손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안에는 교만이 가득해서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기 보다는 자기의 힘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2.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왕비입니다.
아그립바는 갈릴리와 베레아 지방의 분봉왕으로서 헤롯 대왕의 증손자이자 정확한 이름은 마르쿠스 율리우스 아그립바 2세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바로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시켰던 인물이고, 나중에 벌레에 먹혀 죽은 아그립바 1세입니다.
버니게는 사생활이 복잡한 여인으로서 두 번의 결혼 경험이 있고, 오빠 아그립바와 살림을 차지고 동거를 하다가 결혼을 하여 왕비가 된 인물입니다.
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로마의 황제가 된 티투스 장군의 정부가 되 아주 복잡한 여인입니다.
제가 아그립바 2세와 버니게를 묵상하다가 제마음에 부딪힌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이 25장 23절입니다.
(행 25: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베스도가 자신의 책임을 유대왕 아그립바 2세에게 돌리려고 만든 재판자리에 (그 자리에 감옥에 2년 동안 갇혀있던 초췌한 바울이 나오게 되는데) 아그립바 2세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나타났다는게 매우 불편했습니다.
‘크게 위엄을 갖추고’라는 단어에는 그들이 왕으로서 왕비로서 갖추고 있는 정신적 영적 위엄은 아니라 생각되어 헬라어를 찾아보니 ‘판타지아’라는 단어이고, 이 뜻은 ‘과시/허영/허식’입니다.
아그립바 2세와 버니게의 결혼과 부부생활은 유대백성뿐만아니라 그시대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난잡한 사건일 것이고, 그 사건의 주인공인 이들이 백성들에게 ‘권위’를 내세운다는 것은 이렇게 겉으로 화려한 것 말고는 없었을 것이라 짐작되는 구절입니다.
사랑하는 열방가족 여러분, 우리는 과연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까요?
우리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겉을 외모를 꾸미며 살아야 할까요?
베드로는 3장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너희의 단장을 외몰 하지 말라!’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벧전 3: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벧전 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왜 이래햐 하는가에 대하여 그 이유를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우리는 지난 1박2일 동안 ‘거룩한 신부’가 되겠다고 노래하며 고백하여습니다.
거룩한 신부의 화려한 겉모습도 아주 중요하겠지만, 속사람이 정결하고 거룩한 것이야말고 신부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모습입니다.
우리의 신랑되시고, 약혼자이신 예수님이 이제 곧 오십니다.
겉을 ‘크게 위엄을 갖추는’ 어리석은 신부가 아니라 속을 ‘정결하게 갖추는’ 거룩한 신부로 오늘 하루도 살아가는 모든 열방가족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