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IcqMk8-g3hk&ab_channel=AllNationsChurch
‘자 이제 우리 차례 입니다!’
(사도행전 26:24-32)
바울의 변론을 듣던 베스도가 바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미쳤도다!” (24절)
바울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반박합니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5절)
그런데 사실 바울은 미쳤습니다.
미쳤기 때문에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고후 5: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바울은 하나님께 미쳤습니다.
미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을 강권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바울을 위해 죽으시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대신하여 죽었기에, 바울은 예수를 위해 미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7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뿐만아니라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미치고, 예수님께 미치고, 복음에 미치기를 바랬습니다.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그래서 바울은 ‘나를 본받고’ 또 ‘나처럼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고 권면합니다.
제가 오늘 새벽묵상 제목을 이렇게 잡았습니다.
‘자 이제 우리 차례 입니다!’
바울을 본받은 믿음의 선조들이 2023년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그 복음을 우리도 우리의 후손들에게 전수하는 참된 크리스챤으로 살아가야하지 않겠습니까?
돈에 미치고, 욕망에 미치고, 권력에 미쳐가는 세상속에서 ‘참되고 온전한 말’에 미친 진정한 크리스챤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처럼 공회에서, 길거리에서, 재판석에서 어디서든지 당당하게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참된 예수의 제자가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바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고 복음전파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까?
저는 그 이유를 새삼 뉴저지지방회 수련회에 가서 ‘바울’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살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그에게 큰 두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 이제 우리 차례 입니다!’
바울을 본받아서, 바울처럼 살아 온 사람들을 눈여겨 보아서 배운 것처럼, 오늘 하루 사나 죽으나 오직 예수를 위하여 담대하게 증거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