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ZIHBfz_X4cE&ab_channel=AllNationsChurch
확증편향 (確證偏向)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마가복음 8:14-26)
1.Oratio (비움)
->하나님, 저의 Pre-Knowledge를 비웁니다. 나의 Pre-Conception을 비웁니다. 나의 Pre-Judgement을 비웁니다.
하나님, 말씀이 삶이 되게 하시고, 삶이 말씀으로 증거되게 하소서
2.Meditatio
-> 마가복음 8:14-26에는 두 덩어리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제자에 관한 이야기(14-21)이고, 둘째는 눈이 멀어서 앞을 보지못하는 맹인에 관한 이야기(22-26)입니다.
(1)관찰
1)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제자(14-21)
제자들이 배에 타자 자신들이 떡 한 개 밖에 가져오지 못한 것을 두고 걱정하였습니다.(14)
그때 예수께서 경고합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15)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자들이 예수의 말을 어떻게 이해를 하였는지 수군거립니다.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16)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17절)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18절)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19절)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열둘이니이다’(19절)
예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좍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일곱이니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책망합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21절)
제자들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께서 배에 함께 타고 있는데 ‘떡’을 하나 밖에 가져오지 못했다고 걱정합니다. 정말 영적 눈이 멀어있는 맹인과 같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보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제목을 확증편향이라고 정했습니다. 영어로는 confirmation bias입니다. 이뜻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을 말하는데 흔히 하는 말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와 같은 의미입니다.
제자들은 분명히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5병2어의 기적과 7병2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를 보았습니다. 예수께 떡과 물고기가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 떡과 물고기가 들려져 있는 것이 중요한데도 그것을 보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배 안에 있는 떡 한덩어리’만 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무슨 뜻입니까?
바리새인의 누룩은 ‘종교적 위선’을 의미합니다. 겉으로 보이는데는 거룩하게 치장하지만, 속으로는 이중적인 삶을 하는 종교인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헤롯의 누룩은 ‘정치적 위선’을 의미합니다. 겉으로는 세상사람들을 위하여 섬기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욕망과 야망을 위해 민족과 백성도 팔아먹는 정치인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의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5병2어의 기적, 7병2어의 기적으로 아마도 제자들은 흥분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떡과 생선을 나누어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을 두고 마치 자신들의 능력인양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기적의 근원이신 예수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눈은 있어도 보지 못하는 맹인들과 같습니다.
2)눈이 멀어서 앞을 보지못하는 맹인에 관한 이야기(22-26)입니다.
벳새다에 이를 때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합니다(22)
예수께서는 맹인의 손을 붙잡으십시다. 그리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23절)
맹인이 쳐다보며 대답합니다.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24절)
예수께서 다시 맹인의 눈에 안수하십니다.
그때 맹인이 주못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봅니다.(25)
예수께 찾아온 맹인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바디메오처럼 믿음을 갖고 예수께 달려나와 부르짖으면 고쳐달라고 맹인이 자발적으로 행동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 맹인을 불쌍히 여긴 사람들이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였을 뿐인데 예수께서 그 맹인의 눈을 뜨게 하여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한번에 그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주지 않았습니다. 두 번에 걸쳐서 맹인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두 가지 의도가 예수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첫째는, 그 맹인을 고치시는 예수를 목격하고 있을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보지 않고 그냥 ‘떡만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두 차례의 치료과정을 통해 진짜 치료자가 누구신지, 진짜 생명의 떡이 누구신지, 기적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가 중요함을 가르치기 위함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맹인의 눈이 떠져가는 과정에서 제자들의 눈이 떠져가기를 예수께서 소망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맹인의 눈이 떠지는 과정을 통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한번에 왜 예수께서 못 고치시겠습니까? 그러나 점차 치료되는 과정을 통해 물로만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함을, 더 나아가 제자가 되는 것은 한번의 사건이 아니라 ‘과정’의 연속을 통해 예수를 닮아감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간증) 오늘도 켄싱턴거리를다녀왔습니다. 다녀오면서 생각한 것은 예수의 제자들만 확증편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보고싶은 것만 보는 목사’인것을 또 한번 깨닫게 되면서 회개하였습니다.
첫째는, 홈레스피플에 대한 선교전략의 눈이 편향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켄싱턴거리에 가서 섬길 때마다 ‘구제사역’으로만 생각했었습니다. ‘선교활동’이 아니라 ‘구제활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밥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을 잘 드리는 것이 켄싱턴거리의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깨달았습니다. 켄싱턴거리의 사역은 ‘구제사역’과 더불어 ‘선교사역’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기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하였습니다.
그때 AMAZING GRACE를 함께 부르면서 우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때 THIS IS MY STORY, THIS IS MY SONG을 부르면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찬양중에도 계속 외쳤습니다.
"The LORD bless you and keep you"
"the LORD make his face shine upon you and be gracious to you"
"the LORD turn his face toward you and give you peace."
둘째는, 홈레스피플에 대한 생각이 편향되어 있었습니다.
켄싱턴거리에 가서 사역을 마칠 때가 되면 뒷정리를 합니다.
그때 그 거리가 워낙 더러워서 저희들이 가져갔던 컵라면 봉지, 컵, 포크 등… 우리가 가져갔던 것들만 쓰레기봉지에 넣어서 치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김경택변호사님과 전태미집사님이 잠시 보이지 않았다가 나타났는데, 큰 쓰레기 봉지 몇개에 쓰레기를 꽉 채워저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켄싱턴 거리의 쓰레기가 많은데 우리 쓰레기만 가져올 수 없잖아요. 그래서 다 치웠어요”
이전까지 제 눈에는 그런 쓰레기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보였는데, 안보이는 것으로 제 눈을 감겼습니다.
확증편향 ‘보고 싶은 것만 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열방식구 여러분,
이미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기적과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기억이 안나신다구요?
그렇다면 우리 자신들을 첵업해 봅시다.
‘내가 혹시 확증편향에 걸린 사람은 아닌지?’
5병2어, 7병2어의 기적 현상만 보지 마시구요, 그 기정의 근원이신 예수를 봅시다!
우리 손에 있는 ‘떡 하나’에 정신이 팔리지 말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특별히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다 걷어냅시다.
종교적 위선자로 살지 말고, 정치적 위선자로 살지 맙시다!
오늘, 수요예배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