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192번째 이야기 – ‘제6공화국 여덟 번째 정부를 바라보는 조지 오엘의 동물농장과 칼 바르트의 정치신학’
오늘 소개하는 일반 서적은 조지 오엘의 ‘동물농장’이고, 신앙 서적은 김명용 교수의 ‘칼 바르트의 신학’입니다.
일반 서적입니다. ‘동물농장’은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동물이 인간을 내쫓고 유토피아를 세우려고 하였으나, 인간을 쫓고 권력을 잡은 동물이 다시 인간을 따라 다른 동물을 착취한다는 풍자문학입니다. 1917년 니콜라스 2세의 차르 정권을 뒤엎은 볼셰비키혁명은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의 독재와 사회주의 멸망이라는 결말을 보면서 인간의 죄악성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각각의 동물은 소비에트를 건국하고 통치한 역사적 인물을 빗대어 묘사한 것입니다. 농장의 주인 존스는 황제 니콜라이 2세, 메이저 영감은 카를 마르크스, 돼지 나폴레옹은 스탈린, 말 복서는 민중 계급, 클로버는 중산층, 몰리는 소지주, 당나귀는 소련에 사는 유대인, 염소는 지식인층, 닭들은 부농계층을 상징합니다.
책을 읽다가 가슴이 쓰렸던 부분이 있습니다. 착취하던 인간을 내쫓은 동물 지도자가 세운 규칙 중에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가 있는데, 점차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로 변질한 부분입니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외쳤던 대한민국이 마치 동물농장의 풍자문학처럼 도리어 더 무너져 내려가는 모습을 보게 되니 마음이 아픕니다.
신앙 서적입니다. ‘칼 바르트의 신학’은 사회주의와 인간의 죄악성을 가장 많이 고민한 목회자 칼 바르트의 정치신학을 잘 반영한 책입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바르트의 신앙관과 성경 해석 3단계 신학 사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사회주의 운동을 긍정했던 '자펜빌'의 젊은 목회자 칼 바르트의 사상입니다. 바르트는 그의 첫 목회지인 자펜빌에서 산업화로 일어난 노동 문제, 근로자의 문제,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를 깊이 고민합니다. 특별히 1917년 소련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많이 받던 시기의 바르트는 사회주의 운동이야말로 하나님의 의지를 가장 잘 실현한 복음적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사회주의 운동을 ‘부정하면서 긍정한’ 로마서 강해 제1판(1919년)에 잘 나타난 변증법적 신학의 시기입니다. 이 상황은 제1차 세계대전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빌헬름 2세의 전쟁 선포 지지 성명에 동참한 자유주의 신학 스승들의 이름을 보면서 칼 바르트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타락한 자본주의와 방종에 빠진 자유주의를 독일 사회주의 이념으로 구원하겠다는 그들의 선언을 보며 바르트는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재고합니다.
칼 바르트는 로마서를 강해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스스로 세우신다’는 생각을 피력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레닌주의 이상이나 인간이 사회 개선을 위해 행하는 모든 혁명적 노력을 거부합니다.
셋째, 사회주의 운동을 ‘전적으로 부정한’ 로마서 강해 제2판(1922년)의 ‘역설의 신학’ 시기입니다. 1922년에 출판된 ‘로마서 강해’ 제2판은 제1판과 전혀 다른 바르트의 새로운 신학적 노작입니다. 로마서 강해 1판이 헤겔의 영향을 받은 ‘변증법적 신학’이라면 2판은 키르케고르의 영향을 받은 ‘역설의 신학’입니다. 바르트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세계의 어떠한 정치적 체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를 완전히 부정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변혁을 위한 어떠한 인간적인 이념과도 무관하다.”
“하나님 앞에서의 거대한 회개 없이는 비인간화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약탈을 그 뿌리에서 종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도된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는 계속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 것이고, 악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저항운동 속에도 이 인간에 의한 착취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두 책을 읽고 비교, 대조하면서 군사 독재 시절인 1980년대를 거쳐 온 나의 신학과 목회 여정을 돌아보았습니다. 동물농장 이야기의 배경인 1917년 사회주의 혁명과 연관된 인간의 죄악성을 고민한 나, 칼 바르트의 신학 배경인 헤겔과 키르케고르의 인간의 죄악성을 고민한 나,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스스로 세우셔야 한다’고 고백하게 된 지금 나의 모습을 회고합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세워 가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한국과 미국에서 구체적으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피나는 노력과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합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의 신학과 설교 작업은 중단할 수 없고, 이 변혁의 주체로서 이를 이끄실 성령님께 주도권을 드려야 합니다.
2023년, 한국의 제6공화국 여덟 번째 정부 시기의 정치 및 교회 상황이 매우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때 내게 물으시는 하늘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나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전 목사, 넌 나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