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이야기 193번째 이야기 – ‘삶의 끝이 아닌 삶의 완성을 이룬, 나용호 목사님을 추모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일반 서적은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이고, 신앙 서적은 전영규 목사의 ‘따미탕’입니다.
일반 서적입니다. 유시민 작가가 55세가 되었을 때 출판사의 요청을 받고 쓴 책이 ‘어떻게 살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1988년 철학 대학원에 다닐 때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고 유시민 작가의 펜이 된 내가, 이 책을 썼던 작가의 나이 55살에 감동과 도전을 받은 책이 ‘어떻게 살 것인가’입니다.
책의 제목은 삶에 맞추어져 있어 보이지만, 사실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큰 감동이자 도전을 주는데 특별히 페이지 70을 보면 저자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어떻게 죽는가’에 대한 이유가 적혀 있습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단순히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완성이다!”
“소설도 영화도 연극도 모두 마지막이 있다.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스토리가 크게 달라진다. 어떤 죽음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과 의미 품격이 달라진다.”
신앙 서적입니다. ‘따미탕’의 저자인 전영규 목사는 1998년 1월, 66세라는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에 가신 나의 아버지입니다. 유시민 작가의 글을 읽고 죽음에 대한 해설서로 이만큼 좋은 책이 없을 것 같아서 용감하게 소개합니다.
전영규 목사는 4번의 군복을 갈아입은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 한 가운데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한국판 25시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일본 강점기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자유를 위해 중국으로 피난을 갔던 12살 소년 전영규는 배고픔에서 생존하기 위해 중국 장개석 군대에 입대하여 첫 번째 군복을 입습니다. 그리고 곧 중국의 공산혁명으로 인하여 모택동 군대의 군복으로 두 번째 갈아입습니다. 그러다가 김일성에게 전쟁 경험이 있는 조선족 중공군으로 차출되어 북한군 군복으로 세 번째 갈아입습니다. 남한으로 쳐들어왔을 때, 12살 때 떠났던 고향 아현동에 오자마자 북한군에서 탈출하여 국군에 입대하여 네 번째 군복으로 갈아있습니다. 그러다가 미군에게 북한군으로 오해받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힙니다. 참 기구한 운명의 이야기가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예수를 믿는 반공포로들을 북한으로 보낼 수 없다고 결심한 이승만 대통령의 조치로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World Vision International(선명회) 후원으로 목사가 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아버지 전영규 목사가 중국에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 나는 중국 조선족으로 살았을 것이고, 북한에 남아 있었으면 나는 굶어서 죽었을 터인데, 이승만 대통령으로 인하여 내가 이렇게 목사로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미탕의 책을 남기고 하늘나라에 가신 아버지의 죽음을 1998년에 맞이했을 때 첫 번째 장례식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시신 없이 1차 장례예배를 드렸습니다.
“난 이미 한국전쟁 때 죽었다. 그 이후의 삶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덤이었다. 내가 죽으면 내 장기는 필요한 환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의 몸은 의과대학에 기증하여 좋은 의사를 배출하는 데 사용해 달라!”
나는 아버지의 두 번째 장례식을 맞이하기 전까지 오른손에 심한 동상이 걸려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1998년 1월 31일 아버님께서 하늘나라에 가시기 전에 자기 몸을 연세대학교 의과대 학생들을 위해 해부 연구용으로 기증하실 때 내가 손으로 그 시신을 만진 이후에 2년 동안 심한 동상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9년 11월 11일 해부용으로 다 쓰이고 난 후 아버지의 두 번째 장례식 때 이런 글을 적었습니다.
“아버님의 장례식에 갔을 때 내 손은 동상에 걸려 있기에 족할 만큼 아버님의 몸은 차갑고 딱딱하다 못해 단단해져 있었다. 그날 이후 약 2년 동안 난 내 손끝에서 아버님의 차가운 몸기운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동상에 걸렸다. 이제 나를 지켜봐 주시며 사랑하시며 싸우시며 기도해 주신 아버님께서 한 줌의 재로 변한다. 아버님의 유물이 살짝 비치고 이내 뼈를 빠은 인부들의 손에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아버님의 뼈를 확인받고 불과 3분 만에 작은 상자에 곱게 잘 빠진 아버님의 몸을 전달받았다. 그 순간 2년 동안 동상에 걸렸던 나의 손끝이 조금씩 따스한 아버님의 손길로 풀어져 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34년이라는 세월 동안 불효자로 연약한 목회자로 나약한 영혼으로 살아왔던 나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아버님의 선물이었다. 동상에 걸렸던 손을 만져주시고 얼어 있었던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시고 차가웠던 선교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하시고 죽어가는 영혼 사랑의 힘을 쏟아부어 주시고 아버님은 떠났습니다. 이젠 나의 손끝이 늘 따뜻하다. 그리고 영원히 따뜻할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작가의 말대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어떻게 현재의 삶을 의미 있게 살 것인가에 대한 도전을 주는 생각입니다.
최근 2~3년 동안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췌장암으로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뉴저지열방교회의 김라나 사모님이 췌장암으로, 팀 켈러 목사님이 췌장암으로, 나용호 목사님이 췌장암으로 나의 곁을, 가족 곁을, 교우 곁을 떠났습니다.
유시민 작가가 신앙으로 쓴 글은 아니지만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는 맞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단순히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완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소설도 영화도 연극도 모두 마지막이 있듯이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스토리가 크게 달라지듯이, 어떤 죽음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과 의미와 품격이 달라지듯이, 특별히 나용호 목사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의 끝이자 완성이었습니다.
이번 오두막 193번째 이야기는 나용호 목사님께서 생전에 죽도록 하나님과 교회를 충성했던 아이오와 은혜교회의 모든 성도님과 그리고 그토록 사랑하던 최영훈 사모님과 두 아드님께 바칩니다. 나용호 목사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완성이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나용호 목사님 사랑합니다. 우리 천국에서 원 없이 족구 경기를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