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194번째 이야기 – ‘교회를 떠났던 청년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길: 과학과 신학은 대립 관계가 아닙니다!’
오늘 소개하는 일반 서적은 리처드 도킨스 교수의 ‘이기적 유전자’이고, 신앙 서적은 박영식 교수의 ‘창조의 신학’입니다.
일반 서적입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생물학자로 대표적인 무신진화론자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는 생명체 진화의 중심에 있는 유전자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생명체는 단지 유전자에 의해 조종되는 일종의 기계이며, 더 나아가 유전자에 의해 조작되고 작동됩니다. 이기적 유전자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인 전략을 사용합니다.
“성공한 유전자의 기대되는 특질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의 이기주의는 보통 이기적인 개체 행동의 원인이 된다.” (P.42).
‘비정한 이기주의’는 오늘날 세속화된 사회 속에서 생존경쟁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그 진위와는 관계없이 사람들 속에 빠른 속도로 자기 복제하며 전파되고 있습니다. 과학의 자리를 떠나 종교의 영역을 차지하고자 하는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통해 무신진화론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자 합니다.
신앙 서적입니다. 박영식 교수는 ‘종교는 악이며, 신은 망상일 뿐’이라는 주장을 하는 리처드 도킨스 같은 무신진화론자 대응을 위해 개신교 정통주의 창조론에 진화생물학 수용가능성을 모색했습니다.
‘창조의 신학’은 ‘과학으로서의 진화 이론’과 하나의 ‘세계관으로서의 진화주의’를 구별합니다. 과학으로서의 진화 이론이 창조 신앙을 파괴하는지, 창조 신앙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대답을 해 나갑니다.
“교의학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는 태초의 창조, 계속되는 창조, 마지막 창조로 구분하여 언급되어 왔다. (중략) 생물체의 변이와 진화의 전 과정은 창조의 걸림돌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드라마 안에 수용되고 이해될 수 있다. 즉, 생물체의 진화는 하나님의 계속되는 창조, 곧 섭리 안에 놓여 있다.” (P.164).
창조를 좁은 의미에서 태초의 창조로만 이해하면, 계속되는 창조, 마지막 창조는 망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의 모험적 과정에는 생명체의 변이와 번식, 새로운 종의 탄생과 생명의 풍성과 복잡성이 함께 포함될 수 있습니다. 진화 이론은 기독교 신학에서 하나님의 창조가 완결되고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지속성과 역동성, 새로움과 미래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물리적, 생물학적 과정에서 우연적으로 보이는 사건들도 신학의 시야에서는 하나님의 창조 활동 밖에 놓여 있지 않다. (중략) 우연은 하나님의 섭리와 양자택일의 범주에 놓이지 않는다.” (P.175).
두 책을 읽으면서 ‘과학으로서의 진화론’과 ‘진화주의’의 차이점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재 세계에 대한 자연과학설명과 거기에서 유도되어 나오는 세계관 방향 설정 사이를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으로서의 진화론이 아니라 진화주의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창조의 하나님을 공격하고, 정통 기독교의 교리를 무너뜨리려합니다. 하지만 과학계는 과학으로서의 진화론을 통해 더 깊이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는 과학자와 신학자가 많이 있습니다.
국외에서는 ‘신의 언어’의 저자인 프랜시스 콜린스와 ‘도킨스의 신’의 저자인 알리스터 맥그리스가 대표적이고, 국내에서는 ‘창조론 오픈 포럼’을 섬기는 양승훈 박사와 ‘과학과 신학과의 대화’를 섬기는 우종학 교수입니다.
저는 지난 1년 동안 매주 금요일에 있는 ‘창조론 오픈 포럼’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지난 몇 주 동안 (목회자들을 위한) ‘과학과 신학과의 대화’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면서 과학과 신학이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협력의 관계임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기회가 있어서 박영식 교수의 ‘창조의 신학’ 저자 직강을 듣고 토론하면서 은혜를 받고 이렇게 과학과 신학에 관한 글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몇 권의 책과 몇 번의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무신진화론자들과 (근본주의 입장의) 창조과학회 교육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과학과 신학이 대립이 아닌 양립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제언을 합니다.
1)무신론자와 창조과학자가 세워놓은 게임의 법칙에 휘말려 들지 맙시다. 과학자가 곧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창조과학이 기독교의 유일한 견해가 아닙니다. 진화론이 곧 무신론이 아닙니다. 진화주의(evolutionism)와 진화론(evolutionary theory)을 구별해야 합니다.
2)창조는 불변의 진리이지만, 창조 그림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과학 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우리가 과학을 함부로 폄하해서는 안됩니다. 반기독교 정서가 만연한 한국교회, 과학에 기대어 기독교와 복음을 폄하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대화의 상대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3)창조와 진화의 논쟁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의 문제입니다. 위튼대학과 칼빈대학을 비롯한 다수의 복음주의 기독교 교수 중에도 유신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창조과학회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홍수설과 젊은 지구론이 틀렸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물론 저 역시 샌디에고 창조과학회 투어와 창조과학회 탐사여행에 참여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편향된 신학’으로 인하여 반지성주의적이며 전투적인 창조과학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4)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우리가 ‘계속적 창조행위’를 하고 계신 하나님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진화론 입장에 있는 과학자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고, 그들을 통하여 교회를 떠난 젊은이들이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있음을 감사하며 인정해야 합니다.
저는 진화유신론자가 아닙니다. (박영식 교수님은 진화유신론이라는 말보다 과학과 신학을 포괄하고, 성서 전반에 나오는 창조 이해를 반영할 수 있는 ‘포괄적 창조론’이란 용어를 사용합니다) 또 창조과학회가 주장하는 젊은 지구론과 대홍수설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입장에도 서 있지 않는 그냥 목회자입니다) 다만 박영식 교수의 ‘창조의 신학’ 책을 읽으면서 분명한 입장이 두 가지 생겼습니다. ‘과학과 신학은 대립의 관계가 아니다!’ ‘과학과 신학과의 대화는 청년들을 다시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