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196번째 이야기 – ‘신경과학으로 읽는 문학, 문학으로 읽는 성서’
오늘 소개하는 일반 서적은 앵거스 플레처 교수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이고, 신앙 서적은 신영춘 교수의 ‘탄식과 구원의 메타포’입니다.
일반 서적입니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신경과학을, 예일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의 앵거스 플레처 교수는 문학의 서술 기법을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책의 강점을 설명하기에 한정된 지면이기에 ‘문학이 왜 탄생했는지’, 또 ‘문학이란 어떠한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만 엔헤두안나의 시가(詩歌)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을 통해 말하고자 합니다.
엔헤두안나의 시가(詩歌)는 문학의 출발점입니다. 그의 시가는 문학이 가진 두 가지 힘을 보여주고 있는데 첫 번째는 서술 narrative 곧 스토리이고, 두 번째는 사랑, 경이, 믿음 같은 감정입니다.
“스토리라는 문학의 위대한 힘을 이용하여 서술 목적으로 실존적 의구심을 풀어냈다. 그리고 감정이라는 문학의 위대한 힘을 이용하여 불안정한 영혼에 연대감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P.24).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은 철학자들에 의해 사라져버린 ‘소피스트의 문학 찾기 방법’을 발견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문학 찾기 방법의 핵심 기능은 서로 연계된 두 단계로 구성되는데, 첫 단계는 ‘문학이 무엇을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문학이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내고자 거꾸로 분석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감정과 연결되어 있고 후자는 문학 발명품인 플롯, 캐릭터, 이야기세계, 서술자등 서술의 핵심 요소와연결되어 있습니다.
“플라톤은 정신을 고양시키는 수단이 오직 이성밖에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중략) 비이성적 즉 감정적 고양을 경험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고양은 바로 ‘타우마제인 thaumazein’이었다. 요즘 말로 바꾸면 경이 wonder라고 할 수 있다.” (P.34).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 반전 plot twist을 통하여 타우마제인의 경이를 제공하는 문학을 설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플롯 반전에 그치지 않고 확장 stretch을 통해 더 대담하게 문학을 그려냅니다.
“확장은 (중략) 가령 평범한 대상을 은유로 확장시킨 데서 오는 놀라움, 언어의 규칙적 리듬을 시적 운율로 확장시킨 데서 오는 황홀감, 평범한 인간을 영웅으로 확장시킨 데서 오는 경외감이 그 예다.” (P.36).
696페이지나 되는 벽돌 같은 책이지만 1장 호머의 ‘일리아드’를 시작으로 25개의 문학 발명품 곧 ‘문학의 서술 기법’을 신경과학적 접근방법으로 발견해가는 글을 통해 문학의 타우마제인(wonder)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책은 말콤 글래드웰의 표현대로 ‘끝내주는 책’입니다.
신앙 서적입니다. 신영춘 교수는 신학을 공부한 시인으로서 성경의 대표적 탄식시인 시편 22편의 급반전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문학적 해석법’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지도교수인 권혁승 교수에 따르면 ‘편집설’은 신학계의 변개될 수 없는 정설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신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서 말하는 ‘급반전 이해의 새로운 시도’를 통해 편집설과 자료설을 반박합니다.
“시편은 문학적 진정성에 잇대어 볼 때 ‘과연 편집설과 자료설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P.8).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에 있어서 ‘급전과 발견’을 그의 시학(詩學)에서 여러 차례 타당한 것으로 언급하였다. 그는 급반전이란 ‘사태가 반대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중략) 파토스(감정)라는 무대 위에서의 죽음, 고통, 부상 등과 같이 파괴 또는 고통을 초래하는 행동을 의미한다’라고 하며 ‘주인공의 운명의 변화가 급반적이나 발견 또는 이 양자를 다 동반하여 이루어질 때 복잡한 행동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P.149).
앵거스 플레처 교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을 통해 사라져버린 ‘소피스트의 문학 찾기 방법’을 발견해갔다면, 신영춘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서 말하고 있는 ‘급반전 이해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시편의 문학적 해석학의 지평’을 이 책에서 새롭게 확장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성서의 시편을 문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성서가 현대인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을뿐만아니라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해석뿐만 아니라 아래서 위로의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잘 정리하였습니다.
신경과학으로 읽는 문학, 문학으로 읽는 성서가 이토록 재미있는지 몰랐습니다!
앵거스 플레처 교수의 책에 대하여 말콤 글래도웰이 ‘끝내주는 책’이라고 소개하였는데 제가 신영춘 교수의 책을 읽고 감히 평을 한다면 ‘너무 환상적이고, 끝내주는 책입니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글을 읽는 모든 목회자의 마음을 터치했으면 좋겠습니다.
“성서를 새롭게 접근하고, 이를 통한 결과물로 강단이 풍성해지고, 기독교문학의 새로운 지평이 넓혀지기를 기대해본다!” (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