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197번째 이야기
오두막 197번째 이야기 –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소개하는 일반 서적은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이고, 신앙 서적은 헨리 나우웬의 ‘데이브레이크로 가는 길’입니다.
일반 서적입니다. 과학 전문기자인 룰루 밀러는 인간의 행동을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힘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NPR의 공동기획자입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논픽션 데뷔작입니다.
사실 이 책은 어떤 책이라고 분류하기 힘들만큼 과학, 철학, 전기(傳記), 자기 성찰의 감동적인 융합이 가득한 책입니다. 너무 재밌고 흥미진진한 사건 전개가 펼쳐지기에 꼭 읽어보시라고 추천합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 있었던 것은, 아직 분기학이 학문의 자리매김을 하지 못한 시대에 물고기를 분류하며 ‘인간의 사다리’ 연구에 평생을 바친 데이비드 조던 스타 교수의 우생학을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밀러는 신념이 어떻게 우리를 지탱해주며, 또한 그 신념이 어떻게 유해한 것으로 변질 될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룰루 밀러는 한인과학자 윤계숙 박사가 쓴 ‘자연에 이름붙이기’를 읽고 나서 분기학에 존재하지 않는 물고기류를 깨닫게 됩니다. 밀러는 물고기라는 범주가 분기학에서 존재하지 않는데 평생 물고기 분류를 위해 살아온 조던의 신념을 비판합니다. 자기가 세운 모범 인간형에서 뒤떨어진 사람을 위험 개체로 분류한 그의 유해한 우생학적 신념을 고발합니다.
저자는 우생학의 출현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1913년 스탠포드대학교 교수직에서 해고된 후 이탈리아 알프스의 아오스타라는 마을을 방문했을 때로 추정합니다.
“그곳에서 충격적인 것을 목격했다. 아오스타는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식처 같은 도시였다 …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인 곳, 사회에서 무능력자 취급을 받던 사람들이 지원을 받아 번성하는 곳으로 말이다.”(P. 180).
조던은 아오스타의 장애인들을 두고 ‘새로운 인간의 종’으로 퇴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으로 이 백치들을 몰살해야 한다는 그릇된 신념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생학(eugenics)입니다.
조던의 영향으로 미국의 과학자들은 흑인, 아시아 여성, 창녀의 자녀들 그리고 장애인들에게 6만 건의 불임수술을 자행하는 범죄를 저지릅니다. 히틀러와 다를바 없는 일이었습니다. 룰루 밀러는 존재하지 않는 범주를 존재한다는 그릇된 신념으로 자행된 우생학의 민낯을 고발하면서 다음과 같은 다짐으로 책을 마칩니다.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 이 사다리, 그것은 아직도 살아 있다. 이 사다리, 그것은 위험한 허구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P. 268).
신앙 서적입니다. ‘데이브레이크로 가는 길’은 ‘헨리 나우웬이 하바드대학교 교수직을 내려놓고 장애인 공동체 ‘라르쉬(방주) 데이브레이크’에 완전히 정착하기 직전 고뇌의 기록을 모은 책입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교수가 이탈리아 알프스의 아오스타라는 장애인 마을에 다녀온 후에 우생학이라는 괴물을 통해 인간을 ‘적격자와 비적격자’로 분류하는 것과 다르게, 헨리 나우웬 교수는 프랑스에 있는 장애인 공동체 라르쉬를 만난 후에 남은 일생을 장애인들과 그곳에서 살기로 결정합니다.
헨리 나우웬의 행보는 일시적이거나, 또는 장애인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장애인 공동체를 만나기 전에 이미 젊은 날에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흑인 인권 운동에 참여하였고, 교수직에 있을 때에도 페루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빈민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소위 우생학의 분류에서 도태된 인간 개체를 위한 ‘상처받은 치유자’로 살았습니다.
그가 늘 하던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장애인들을 보살피는 여러분을 도와드리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여러분이 장애인을 하나 더 받아 주셨습니다!”
스탠포드대학교의 데이비드 스타 조던 교수 그리고 하바드대학교의 헨리 나우웬 교수, 그들은 우연치고는 운명처럼 교수직을 그만두고 장애인 공동체를 방문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경험을 하였지만 전혀 다른 해석의 결말에 도달했습니다.
분류학에서는 물고기가 존재하지만 분기학에서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체적으로는 장애인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장애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룰루 밀러는 미국이 정책적으로 우생학을 옹호한 역사를 밝히면서 사회적 약자를 강제로 격리하고 불임시술을 자행한 사실을 인터뷰를 통해 고발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Peabody Awards)을 수상한 과학 전문기자가 되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딸을 무진장 사랑하는 후배 목사 부부가 제가 섬기는 교회를 며칠 전 방문하여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장애를 가진 딸을 또한 무진장 사랑하는 장모님이 사랑하는 후배의 아내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했었습니다.
“사모님, 난 사모님의 마음을 알아요. 힘내요!”
난 가끔, 목사직을 내려 놓으면 무엇을 하며 남은 인생을 살까라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조던의 길이 아니라 헨리 나우웬 교수와 같은 길을 걷고 싶습니다.
(분기학은 종의 형질을 분석하여 어떤 종들이 다른 종들보다 진화적으로 얼마나 더 가까운지 가설을 세우는 분류학의 한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