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lWP4yOWqICc&ab_channel=AllNationsChurch
예수님 때문에 받는 모욕이라면 기쁘게 누리자!
(열왕기상 22:1-12)
1.비움
->내안에 있는 욕망, 고집, 전이해를 비웁니다.
2.채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셔서, 말씀이 삶이 되고, 삶이 말씀이 되게 해 주옵소서.
(1)관찰
열왕기상 22:1-12 말씀은 크게 3덩어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아합이 여호사밧에게 동맹군을 요청하는 이야기(1-4절)
둘째는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람에게 문의하자는 이야기(5-9절)
셋째는 시드기야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파는 이야기(10-12절)
1)아합이 여호사밧에게 동맹군을 요청하는 이야기(1-4절)
->아합은 3년전 벤하닷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 자기의 힘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길르앗지역의 아람 땅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그때 남유다의 여호사밧왕이 사마리아를 방문하게 되고 아합은 그에게 동맹군이 되어 함께 싸우자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제까지 여로보암과 느호보암으로 시작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과의 싸움이 지속적이었는데, 여호사밧이 아합의 제안에 흔쾌히 화답하는게 아닙니까?
(왕상 22:4)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냐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2)여호사밧이 아합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람에게 문의하자는 이야기(5-9절)
->다만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두 가지 조건을 제안합니다.
첫째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을 듣자는 것이고, 둘째는여호와의 사자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받자는 것이었습니다.
(왕상 22:5)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왕상 22:7) 여호사밧이 이르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여호사밧이 남유다왕으로서 예루살렘성전에서 하던 신앙습관이 북이스라엘 사마리아에 와서도 지속되는 힘을 보게 됩니다.
3)시드기야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파는 이야기(10-12절)
->아합은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미가야 대신에 자기에게 아부하는 시드기야의 말에 환대합니다. 결국 그런 거짓 선지자를 통해 들은 거짓 하나님의 말씀은 아합이 바알과 아세라에 순복하는 왕이 되는데 함께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왕상 22:11)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를 위하여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2)새김
->하나님이 제게 주신 레마의 말씀은 3가지입니다.
첫째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둘째는 개혁은 교회에서뿐만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셋재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1)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아합과 여호사밧이 함께 동맹군이 되어 아람을 공격한다는 것이 불편합니다. 여호사밧이 아합을 두고 한 가족이고, 한 군대라는 말이 어색합니다.
그런데 사실 아합과 여호사밧은 사돈관계입니다. 아합의 딸 아달랴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결혼하여 한 가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합의 제안을 여호사밧이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한 가족이 된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아람의 공격으로부터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물리치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있고,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데, 여호사밧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한 것입니다.
이 사건을 두고 역대하 19장에서 예후는 여호사밧의 죄를 지적하고, 여호사밧은 이를 두고 회개하고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하나님만 의지하자 외치면서 신앙개혁 운동을 다시 일으킵니다.
(대하 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
(대하 19:4)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살더니 다시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두루 다니며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
열왕기상을 살펴보면, 여호사밧이 아람과의 싸움에서 죽을 위기가 있었습니다. 아합의 왕복을 입고 있던 그에게 아람의 군사들이 집중하려고 할 때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릅니다. 그떼 아람의 군사들이 그가 아합왕이 아닌 것을 보고 그를 살려줍니다.
(왕상 22:32)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그들이 이르되 이가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왕이라 하고 돌이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는지라 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
그런데 역대하 18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고 그래서 아람의 군사가 여호사밧을 살려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의 부르짖음(또는 회개?)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을 도우셔서, 하나님이 아람의 군사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여호사밧에게서 떠나도록 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14을 보면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나아가 ‘자기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마 11:29-30)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개혁은 교회에서뿐만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여호사밧은 남유다의 선한 왕 중의 한 명입니다. 히스기야 요시아에 버금가는 신실한 왕입니다.
여호사밧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종교개혁을 일으킨 인물이 아니라, 아합 앞에서, 북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역대하 17:3-4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고자 하였습니다.
(대하 17:3-4)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역대하 19:8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을 세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였습니다.
(대하 19:8) 여호사밧이 또 예루살렘에서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족장들 중에서 사람을 세워 여호와께 속한 일과 예루살렘 주민의 모든 송사를 재판하게 하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라
성전안에서 외쳤던 종교개혁이, 사마리아성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돌아가자고 당당히 외칩니다. 이런 여호사밧의 신앙이 참 아름답습니다.
3)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합에게 아부하는 시드기야와, 아합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미가야 선지자를 보면서 어떤 목사가 되어야만 하는지가 명확해집니다.
사람에게 아부하는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 아합으로부터 미움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공의를 외칠 수 있는 미가야와 같은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성령을 받은 후 변화된 예수님의 제자들이 떠오릅니다. 그들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아도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는 참된 제자’의 삶을 선택합니다.
(행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3)기도
하나님, 오직 예수님과 멍에를 같이 메는 종이 되겠습니다.
하나님, 늘 개혁하는 종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는 자격을 기뻐하게 하소서
3.나눔
성경강독반에 최선을 다하자
성결선교학교 마지막 강의에 최선을 다하자
예수 때문에 모욕을 당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