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201번째 이야기 – '허무한 십자가’가 아닌 ‘완전한 십자가’에 달리는 목사로 살자!
오늘 소개하는 일반 서적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이고, 신앙 서적은 마르틴 헹엘의 '십자가 처형'입니다.
일반 서적입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을 쓴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공허한 십자가’를 통해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8살 외동딸이 강도에 의해서 살해되는 비극을 당한 니카하라 부부는 살인범이 이전의 강도살인 범죄로 징역살이하다가 모범수로 감형받아 가석방된 인물인 것을 알게 됩니다. 변호인들이 살인자 히루카와를 구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니카하라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왜 이 사람은 히루카와를 구하려고 이렇게 기를 쓰는 것일까? 왜 사형을 피하게 하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것일까? 만약 그의 아이가 똑같은 꼴을 당해도 범인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애를 쓸까?" (P.84).
소설은 결국 살인범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것이 그들의 지상과제가 되어버린 부부의 노력대로 딸의 살인범은 사형당합니다. 그리고 제 머릿속에는 212페이지에 적혀 있는 문장이 남았습니다.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p.212)
목사로서 책을 구입할 때 '공허한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허한 십자가’란 죄에 대한 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아서 또 같은 죄를 반복해서 저지를 수 있도록 한 '의미 없는' 십자가입니다.
신앙 서적입니다. '십자가 처형'의 저자인 마르틴 헹엘은 튀빙겐대학교에서서 학위를 받고 신구약 중간시대와 교부 시대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신학자입니다.
성경 외 문헌들과 신화에 나타난 다양한 십자가와 그와 비슷한 죽음들을 추적하고 탐색하여 십자가 처형이야말로 가장 극악하고 수치스러운 형벌이었음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인 제12장 요약 및 결론을 보면 '공허한 십자가'가 아닌 '진짜 십자가'의 의미를 10가지로 잘 정리하였습니다.
“십자가 처형이 사용된 주된 근거는, 추정하건대, 이를 공개적으로 시행했을 때에 얻을 수 있는 범죄 억제책으로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P.176).
“십자가형은 원초적인 복수심을 만족시켰을 뿐 아니라 각각의 통치자들이나 대중들의 사디즘적인 잔인함을 만족시켰다.” (P.177).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에 관한 최초가 기독교의 메시지는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 자들의 고통을 하나님의 사랑과 '결속' 시킨다.” (P.177).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십자가, 헬라인 둘에게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에 공허하게 달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심으로 완전한 십자가를 이루셨습니다. 죗값은 치루기 위하여 공허한 십자가에 묶여만 있지 아니하시고, 완전한 십자가에서 완전한 대신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둘째는 십자가에 달린 나 자신입니다. 나는 부끄럽게도 아주 오랫동안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시늉만 하면서 달려 있기만 하였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결속시키는 십자가의 메시지, 기독교의 메시지를 제 몸으로 채화시키지 못하여서 십자가를 허무하게 만들었습니다. 고대 시대의 십자가형이 잔혹함을 바라보면서, 나의 신학과 설교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었는지를 회개합니다. 허무한 십자가가 아니라 완전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증거만 할 뿐만 아니라 또 나 자신도 완전한 십자가에 달려 죽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