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202번째 이야기 - '설교는 농담이 아니다!'
오늘 소개하는 일반 서적은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고, 신앙 서적은 존 파이퍼의 '하나님을 설교하라’ 입니다.
일반 서적입니다. '농담'이라는 소설책의 영어 제목은 ‘JOKE’로서 사회주의 이념을 절대시하던 체코 사회를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그 이야기는 쿤데라의 인생 이야기를 투영한 것처럼 보입니다.
밀란 쿤데라의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전공을 철학에서 신학으로 바꾸는데 일정 역할을 했다면, ‘농담’은 신학을 전공한 설교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에 관한 고민을 하게 한 책이었습니다.
프라하 공연예술대학교 영화학과 교수였던 쿤데라는 1968년에 일어난 ‘프라하의 봄(Prague Spring)’ 때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합니다. 그러다가 소비에트 침공으로 민주화 운동이 좌절되는 8월에 정부 주도의 숙청으로 교수직에서 해직되고 자신의 모든 저서가 프라하 광장에서 불태워지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쿤데라는 곧 프랑스로 추방당하고 그곳에서 체코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쓴 책이 ‘농담’인데, 체코 작가들에게는 ‘올해의 책’ 상을 받지만, 체고 정부로부터는 출판이 금지되는 시련을 겪습니다.
책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공산당원이었던 청년 루드비크는 스탈린에 푹 빠진 마르케타라는 여인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도무지 자신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자, 농담(JOKE)이 섞인 엽서 카드를 보냅니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P.59).
스탈린 시대의 반스탈린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트로츠키를 두고 ‘트로츠키 만세’라고 한 농담(JOKE) 때문에 루드비크는 학교와 당에서 쫓겨나 군대에 끌려간 후 결국 황폐한 광산에서 15년 동안 고통의 망명 생활을 하게 됩니다. 마치 프라하의 봄 시기에 반소련 운동에 가담했다가 프랑스로 망명가게 된 쿤데라의 인생처럼!
루드비크는 자신의 엽서가 농담(JOKE)이었다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물론이고 농담(JOKE)을 함께 즐기던 친구로부터도 공개적인 비난을 받습니다.
"동지들, 그건 다만 장난을 치려고 했던 것뿐이야.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음을 느꼈다." (P.65).
"나는 아무리 아니라고 해 봐야 이제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똑같은 소리를 여러 차례 늘어놓았다. 농담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말일 뿐이었고 그저 당시 내 기분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P.66).
‘농담’이라는 소설은 농담(JOKE)이 진담이 되고, 진담이 농담(JOKE)이 되는 인생사를 다루면서 결코 세상사가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주는 동시에, 이데올로기가 휘두르는 잔인함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신앙 서적입니다. ‘하나님을 설교하라’의 영어 제목은 ‘The SUPREMACY of GOD in PREACHING’입니다. 존 파이퍼의 설교의 근간이 되는 조너선 에드워즈의 삶과 신학, 설교를 통한 설교의 토대와 목적을 살펴보고 특별히 ‘하나님을 높이는 설교가 어떤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존 파이퍼가 조너선 에드워즈의 어깨에 올라가서 ‘멀리’ 그리고 ‘깊이’ 성경을 바라보았다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존 파이퍼의 어깨에 올라서서 '멀리' 그리고 '깊이' 성경을 바라보는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특별히 밀란 쿤데라의 책 ‘농담(JOKE)’과 연관하여서 존 파이퍼의 ‘설교와 조크(JOKE)’에 관한 생각을 읽을 때 큰 깨달음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많은 설교자는 웃음을 설교의 목표인 회개와 대체시키는 것 같다. 웃음은 사람들이 좋은 감정을 느낄 때 나온다. 그것은 사람들을 움직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P.60).
"(하지만) 유머 몸짓 표현력과 같은 것이 사람들의 슬픔을 없앨 수는 있겠지만 성령께서 오신 근본적인 의도를 성취할 수는 없다. 성령께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고, 회개한 영혼을 새롭게 하신다." (P.62).
조크(JOKE)는 청중들을 설교자에게 집중시키는 힘이 분명히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하지만 그 역할을 넘어서 설교의 중요한 임무인 죄인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회개한 영혼들이 말씀 안에서 변화되는 역사를 ‘그 조크(JOKE)’가 방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간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존 파이퍼의 조크(JOKE)에 관한 생각이 좀 과격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가 휘튼대학 의학부 예과 3년 때 해럴드 존 오켄가의 설교에 관한 강의를 듣고 의사의 길을 중단하고 설교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순간을 생각한다면 이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 파이퍼는 평생 ‘하나님을 기뻐하라’(Desiring God)고 선포해 왔고, 그 어떤 설교자보다 ‘희락 주의자’로 말씀을 선포해 왔습니다. 그만큼 설교의 기쁨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설교자입니다. 하지만 그 기쁨의 원천과 동기가 결코 설교자의 JOKE(농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통해 얻어짐을 명확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 마르케타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던 농담(JOKE)이 루드비크를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뜨렸습니다. 청중들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던진 조크(JOKE)가 '죄의 회개'와 '복음의 영접'을 방해 한다면 그 설교자는 반드시 ‘차라리 설교자가 되지 않는 것이 나았으리라’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요즘 시대는 소돔과 고모라 때처럼 ‘진리를 농담으로 여기고, 농담을 진담으로 여기다가’ 죽어가는 불행한 시대라고 여겨집니다.
(창 19: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JOKE)’으로 여겼더라.
두 권의 책 ‘농담’과 ‘하나님을 설교하라’에 관한 글을 쓰다가 야고보서 3:2의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성령님 붙잡아 주십시오!
(약 3:2)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