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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기도회 Dawn Prayer Meeting

 

요한복음 1장 19절부터 28절까지.jpg

 

 

나는 ‘개’가 아니라 ‘예수’와 연결된 인생을 살고 싶다! 

(요 1:19-28)

 

https://www.youtube.com/watch?v=F2LNrASpNdA

 

사람이 누구와 비교되느냐에 따라서 존재가치가 달라집니다. 

개랑 비교하면 개취급 받습니다.

어느날 개랑 달리기를 했는데 사람이 이겼습니다. 그사람은  개보다 나은 사람 입니다.

개에게 지면  개보다 못한 사람 , 개랑 똑같이 결승선을 통과하면 ‘개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인생이 연결되어 있으면 전혀 다른 취급을 받습니다.

어느날 예수님이랑 달리기를 했는데 사람이 이기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되고, 예수님에게 지면 ‘주의 길을 따르는 자’가 되고, 예수님과 똑같이 결승선을 통과하면 ‘주님과 동행하는 자’가 됩니다.

 

오늘 묵상본문은 어제 예수님의 이야기와 대조를 이룹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세계에 들어오셨는데, 세상이 알아 주지도 않고(10절),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습니다.(11절)

 

반면에 세례요한이 세상에 나타나자 제사장이 바리새인이 세례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의 존재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당신은 누구시요?” “당신은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제사장과 바리새인은 어떤 존재들입니까?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으로 서로 부활이 있다. 없다 논쟁으로 천적관계에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례요한에 대하여는 모두 호의적입니다.

 

왜 그럴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왜 이토록 예수는 환멸하고 무시하는 반면에 세례요한에 대해서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모두 환영하며 추대하는 분위기일까?

 

세례요한의 출신성분이 예수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인 반면에 예수는 무명의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제사장의 아들인데도 성전에서 부귀영화를 누리지 않고 광야로 나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회개하라 천국이 왔다’ 외치면서 개혁을 부르짖습니다.

정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모두에게 환영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세례요한입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세상의 환대를 거부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아무 명확하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광야의 소리다’ 선언합니다.

자신의 사명을 두고 ‘나는 예수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고백합니다. 오직 예수만 높입니다.

 

더나아가서 자신의 두 제자 요한과 안드레를 예수의 제자로 내어드리기까지 합니다.

그는 철저하게 I am nothing, only christ!를 외치고 실천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세례요한을 두고 이렇게 칭송합니다.

(눅 7:28)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

 

세례요한은 베드로와 같이 겸손하고. 요한계시록의 천사처럼 겸손합니다.

(행 7:25-26) …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계 22:8-9)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고 엎드렸다…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마 16:24)

바울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갈 2:20)

 

한국의 정치가 시끄럽고 어수선합니다.

그런데 그 중심에 예수와의 끈에서 끊어진 독사같은 목사들이 난리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모든 목사들이 개와 연결되어 있는 끈이 있다면 다 끊어버리고, 오직 예수와 연결되는 끈으로 띠 띠우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까지는 자기 맘대로, 자기 욕망대로, 자기 야망대로 살았다면, 이제 좀 하나님이 이끄시는대로 순종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기도)

1)하나님,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 자들에게 나의 소명과 나의 사명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깨달음을 주시옵소서.

2)하나님, 나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소리로 살아갈 때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게 하옵소서.

3)하나님, 날마다 나는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만 증거하는 목사로 살게 하옵소서.

4)하나님, 나의 사람을 키우는 삯군 목사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를 세워가는 주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5)하나님, 인생을 살면서 개와 연결된 삶이 아니라, 예수님과 연결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6)하나님,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며 살다가 예수 앞에서 복을 받는 모든 열방성도님들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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