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khKIre5PYrs&ab_channel=AllNationsChurch
(요 6:60-71)
예수님께서 하늘의 양식을 증거하고 나자 무리들은 물론이고 제자들 중에서도 ‘이 말씀이 어렵도다’ 말하면서 예수님의 증거에 수군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61절)
예수님이 이미 앞부분에서 ‘수군거리지 말라’고 거룩한 경고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듣지 않았던 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떠났습니다.(66절)
수군거림의 결과가 떠남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아주 쉽고 명확하게 설명하십니다.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64절)
“너희 중에 나를 팔 자가 있다!”(64절)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요한잀 2:18-19 말씀이 떠오릅니다.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예수님께서는 몇차례에 걸쳐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않았다’(요 18:9), “그들이 내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선언하신 것을 기억해 보면, 가롯유다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존재이고, 제자들 중에 있었지만 ‘예수께 속하지 않은 자’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수군거리다가 -> 예수를 떠나고 -> 결국 예수를 팔아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어제 책삶 33번째 모임에서 배덕만 교수님께서 저자직강을 마무리하시면서 마지막에 하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헬조선을 향한 인간의 가치를 선포해야 합니다. 근원으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단절된 세상과 소통해야 합니다.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저항하는 지식인으로 발언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제게 이렇게 들렸습니다.
“전목사, 너는 저항하는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저항하는 지식인의 발언으로 살아야 한다!”
생각해 보면, 목사인 나는 그 누구보다 ‘예수로 인하여’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여 뒤에서 수군거리면서도 설교로 먹고 살고, 가르침으로 먹고 살고, 예수로 먹고 삽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각을 정직하게 전하지 못하고, 혹시라도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날마다 노심초사 뒤로 숨는 목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전목사, 그래도 넌 날 팔아 먹고 살지는 않으니 고맙다!”
뜨끔!
‘예수로 인하여’ 먹고 사는 것과 ‘예수를 팔아’ 먹고 사는 차이가 무엇인가? 사실 이 묵상을 쓰면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이런 생각을 하나님께서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로’ 먹고 사는 목사는 ‘나로 인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양들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는 ‘독사같은’ 짓은 최소한 하지 않는다면,
‘예수를 팔아’ 먹고 사는 목사는 ‘자기로 인하여’ 하나님이 맡기신 하나님의 양들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면서도 부끄러움이나 미안한 마음을 전혀 갖지 않는 파렴치한 독사라고 생각되어집니다.
하늘나라에 가신 아버지 고 전영규 목사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목사가 목사답지 못하면, 독사가 된다! 목사가 될 것인가 독사가 될 것인가는 한 획 차이다!”
예수를 팔아 먹고 사는 독사같은 목사에게 (목사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배덕만 교수님의 강의에 힘입어 경고합니다.
“당신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양들이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하라!”
“예수를 팔아 먹고 살기 위해 젊은 청년들을 멸망의 자리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
마지막 회개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저 역시 늘 수군거리며 주를 따라가는 연약한 목사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주님을 늘 배반할 때가 있습니다. 회개의 영이 날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목사일을 하면서 독사짓거리를 하지 않도록 저를 붙잡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