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1-8)
*ORATIO(비움/기도)
*MEDITATIO(채움/말씀)
(1)관찰 -> 마가복음 16:1-8은 5메시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여인들이 죽은 예수를 보기위해 무덤으로 찾아갔습니다.(1-2절)
->여인들은 죽은 예수를 보러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 이유는 유월절날 급히 돌아가신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바르기 위함이었습니다. 매우 일찍 무덤으로 나섰던 여인들의 마음에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차 보입니다.
2)여인들은 돌무덤의 문을 어떻게 오픈해야 할지 걱정하였습니다.(3-4절)
->여인들은 누가 자신들을 위하여 무거운 돌문을 열어주겠는가를 걱정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돌문이 굴러져 있었습니다. 돌이 심히 컸지만 누군가가 치워버린 것입니다.
3)청년이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습니다.(5-6절)
->청년은 무덤으로 들어온 여인들에게 ‘놀라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셨고, 여기에 없으신데, 여기 빈무덤이 바로 증거라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여인들은 두려워합니다. 참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두려워하기 보다, 예수님의 부활소식에 더 두려워하는 모습을 봅니다.
4)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명령하였습니다.(7절)
->청년은 예수님의 명령을 여인들에게 들려줍니다. 예수께서 갈릴리로 먼저 가시는데 전에 말한대로 거기서 보자는 것입니다.
5)여자들이 청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8절)
->여자들은 청년의 말을 듣고, 빈무덤을 보고난후 반응이 아쉽습니다. 몹시 놀라 떱니다. 그리고 무서워서 무덤에서 나와 도망칩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믿으려고 하지도 않고, 또 제자들에게 증거하려고 하지도 않고,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메시지도 전하지 않습니다.
(2)새김 -> 하나님이 내게 주신 레마의 말씀입니다.
1)여인들의 죽음보다 부활을 더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신앙을 점검해 봅니다.
->아무리 부활의 사건을 이성적으로 믿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여인들에게 하나님은 많은 증거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아니 도리어 두려워합니다.
오늘 동네세메줄성경 말씀묵상 제목이 다시 생각납니다.
“죽음보다 보잘것없는 삶을 두려워하라!”
예수님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여인들의 경우는 예수님의 죽음보다 부활을 두려워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빈무덤의 표적도, 청년의 메시지도, 예수님의 약속도 전혀 떠올리지 않고 무덤을 나와 냅다 도망칩니다.
죽음보다 정말 믿음없는 보잘것 없는 삶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지난주 민수기 말씀을 묵상하다가 10명의 정탐꾼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평가하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메뚜기입니다!”
이 고백을 듣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고민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2)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몰라도 심히 두려워하는 것은 죄일 수 있습니다.
->여인들이 두려워했다는 것을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나역시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기에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두려워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 근거를 둡니다.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지나친 두려움은 그래서 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보다 부활을 보여주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여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죽음보다 보잘것 없는 삶, 우리의 믿음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3)하나님이 왜 돌무덤의 문을 직접 여셨을까요?
->예수님이 무덤에서 나오시도록? 아닙니다! 예수님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십니다. 문이 열려있지 않아도 제자들을 찾아가셨을 때처럼 충분히 나오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인들이 빈무덤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부활의 자리를 직접 보고 큰믿음을 갖게 하시기 위함이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열려진 무덤의 돌을 보고 더 두려워하게 되었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나사로의 돌무덤의 문처럼 우리가 열어야 할 돌무덤의 문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럴 때는 우리가 과감하게 우리의 마음의 문, 불신의 문, 두려움의 문을 말씀을 의지하여 열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돌무덤의 문을 하나님이 여시고 빈무덤으로 초대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4)예수님은 제자들을 갈릴리로 다시 초대하셨습니다. 왜 그래셨을까요?
->그곳에서 마태복음 28장의 내용처럼 ‘사도로 파송’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앞에 도망쳤던 제자들을 회복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갈릴리는 제자들을 처음 부르시던 곳입니다. 에베소교회의 첫사랑과 같은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하고 도망친 제자들의 믿음을 회복시키기 원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보다 더 보잘것 없는 믿음을 가진 제자들, 보잘것 없는 삶을 가진 제자들을 회복시키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의 완전한 회복이 있기 전에 과감한 결정을 하셨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일지라도 자신의 권세와 능력을 부어주시고, 자신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마 28:16-18)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3)기도
1)하나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저도 십자가의 죽음을 지게 하소서.
2)하나님,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죽음보다 보잘것없는 믿음, 보잘것없는 삶을 두려워하게 하옵소서.
3)하나님, 빈무덤의 기적을 믿음으로 받게 하시고, 내 돌문을 활짝 열어 살아계신 예수, 부활하신 예수를 영접하게 하옵소서.
4)하나님, 갈릴리로 부르실 때 달려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처음 만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던 첫사랑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TENTATIO(나눔/시련)
1)부활절연합새벽예배에 기름을 부으시고,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부활의 믿음이 온전히 스며드는 예배와 설교가 되게 하옵소서.
2)부활주일예배를 통해 모든 열방식구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