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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디모데후서 1:1-18)
1.갈등찾기/ 인생을 사시면서 부끄러워하던 사람, 또는 사건이 있으십니까?
(고백) 저는 북한군이셨던 아버지가 부끄러웠습니다. 칼부림나는 난민촌에서 목회하시는 아버지가 부끄러웠습니다. 반공을 외치며 부흥회를 하고, 군부대를 다니면서 정훈교육을 하는 아버지가 부끄러웠습니다.
1)바울은 자신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유언처럼) 말합니다.
(딤후 1: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거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2)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딤후 1: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거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2.갈등분석/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극적방법)
1)부모에게서 받은 거짓없는 믿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딤후 1:5)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하노니, 그것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예) 조영진목사님의 설교 -> 가장 가치있는 것을 자녀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십시오. 금과 은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입니다! 금과 은은 생명을 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이름은 생명을 구합니다.
(행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2)성령님이 주시는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
3.실마리/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적극적방법)
1)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딤후 1:8)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질문) 어떻게? ->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질문) 하나님의 능려근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 “내가 믿는 자를 알고” “그가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능히 지키실 줄 확신’ 하는 것입니다.
(딤후 1:12)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그가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능히 지키실 줄 확신하노라.
바울은 복음의 수치 대신 복음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적극적으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습니다. 감옥에 갇혀 곧 죽을 날보다, 자신을 구원해 주실 하나님께 확신이 있었습니다.
(예) 조영진 목사님의 설교처럼,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였습니다. 그래서 앉은배이 거지에게 ‘명령’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행 3:6-7)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2)복음을 지키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딤후 1:13-14)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질문) 어떻게? ->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복음은 단지 문자적으로 지킬 수 없습니다. ‘삶으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삶이 되고, 삶이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 모든 역사는 성령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 바울은 두 종류의 사람을 예로 듭니다.
가)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 -> 부겔로와 허모게네 -> 복음의 부끄러움을 감당하지 못하여 떠납니다.
(딤후 1: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나)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사람 -> 오네시보로 -> 바울을 찾아와 감옥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딤후 1:16-18)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예) 목회가운데 부끄러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나를 부끄러워하지 앉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 윤기석장로님, 정안젤라권사님
4.복음제시/ 복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합니까?
1)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계획입니다.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은혜대로 하셨으며 이 은혜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 전부터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
복음은 사람의 업적이 개입할 자리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이루어갑니다.
“영원 전부터” 곧 창세 전부터 구속의 계획임을 보여줍니다.
2)복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딤후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드러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복음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추상명사이지만, 아주 구체적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상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망을 페하시고, 생명과 영원한 불멸을 보여주셨습니다. 복음은 ‘죄용서’를 넘어 ‘영원한 생명’입니다.
3)복음은 전파하고 선포할 사람에 의해서 역사합니다.
(딤후 1:11-14) 이 복음을 위하여 내가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움을 입었노라…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그가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능히 지키실 줄 확신하노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복음은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복음의 사명자가 되라고 명령합니다.
5.결론/ 인생을 사시면서 부끄러워하던 사람, 또는 사건이 있으십니까?
(고백) 저는 북한군이셨던 아버지가 부끄러웠습니다. 칼부림나는 난민촌에서 목회하시는 아버지가 부끄러웠습니다. 반공을 외치며 부흥회를 하고, 군부대를 다니면서 정훈교육을 하는 아버지가 부끄러웠습니다.
(수정) 저는 고난중에 있던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칼부림나는 난민촌에서도 목회를 포기하지 않으신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이데올로기 분쟁가운데서도 ‘복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으신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질문) 디모데는 바울을 부끄러워했을까요? 복음을 부끄러워했을까요?
아닙니다!
디모데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는 감옥에 갇힌 바울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기억할 때 이런 말을 합니다.
“네 눈물을 생각하여… 내 기쁨이 가득하다!”
(딤후 1: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질문) 언제 바울이 디모데의 진정한 눈물을 보았을까요?
è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죽기위해 떠날 때, 에베소에서 찾아온 장로들과 함께 바울의 목을 잡고 크게 울던 때를 아마도 감옥에서 기억하고 말한 것 같습니다.
(행 20: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후회) 제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아주 아쉬운 부분은 ‘아버지의 임종’을 목격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버지와 헤어질 때 마지막 아버지의 유언을 듣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런 시간이 있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전우철목사,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마라!”
“전우철목사,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라!”
“전우철목사, 복음을 지키라!”
“전우철목사, 복음을 위한 전도자가 되라!”
(다짐) 만약에 전겨레목사와 마지막 작별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때 아버지 전영규목사님처럼 할 것 같습니다.
“전겨레목사,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고난을 받으라. 복음을 지키라. 복음을 위한 전도자가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