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자가 아니라 ‘오는’ 자가 되라!
(마11:20-30)
*비움(ORATIO)
*채움( MEDITATIO)
(1)관찰 ->마태복음 11:20-30은 3메시지로 구성되어 있다.
1.예수의 심판 (20-24)
예수께서는 고라산,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을 심판하신다. 심판의 이유는 가장 큰 권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라산과 벳새다는 심판날에 이방 도시인 두로와 시돈보다 더 견디기 어렵다고 선언하신다.(22)
가버나움은 심판날에 소돔땅이 더 견디기 쉽다고 선언하신다. (24)
2.회개하지 못한 이유 (25-27)
그 때에 예수께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는 나타내심을 감사한다. (25)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도시들이 심판을 받게 된 것은 아버지의 뜻이다. (26)
아버지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27)
3.예수의 초대 (28-30)
예수는 은혜는 가장 많이 받고 회개하지 않는 도시를 책망하시다가 갑자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초대장을 올리신다. (28)
초대장은 쉼을 주시겠다는 내용인데, 무거운 짐을 없애주시는 방법이 아니라 예수의 멍에를 같이 메고 배우면 마음에 쉼을 얻는다는 것이다. (29)
예수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다. (30)
(2)새김 -> 하나님이 주신 레마의 말씀
예수는 가장 강한 책망과 가장 따뜻한 초대장을 오늘 성경본문에서 보내주신다.
1.고라산,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의 죄는 ‘불신’이 아니라 ‘익숙함’이다. (20-24)
그들은 예수의 기적을 가장 많이 보았고, 예수의 말씀을 가장 가까이서 들었다. 그러나 듣고 알기만 하지 도무지 그 말씀을 듣고 삶의 변화가 없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회개없는 은혜는 심판이 기다린다. 무지해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복음에 대한 거절로 인하여 심판을 받는다.
기적이 많이 일어난다고 회개가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은혜를 오래 누릴수록 오히려 둔감해질 수 있다. 익숙한 설교, 반복되는 예배, 당연하게 여기는 복음이다.
“하나님, 제가 예수의 권능의 역사에 익숙함의 죄를 짓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열방교회 성도들이 예수의 기적을 많이 체험하게 하시고, 거기에 걸맞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2.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이 아니라 ‘의존’으로 열린다. (25-27)
에수는 도시들을 책망하다가 갑자기 하늘을 향해 기도하신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감사하나이다.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인함이니이다”
‘지혜롭고 슬기 있다’는 말은 지식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 예수를 평가의 대상으로 두는 사람이다. 그들은 도무지 회개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심판이다.
‘어린 아이’는 누구인가? 비어 있는 사람, 기대하는 사람, 붙잡을 줄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이 아니라 ‘의존’으로 열린다는 선언이다.
“하나님, 예수의 말씀만 듣고 아는 척, 깨달은 척, 다 아는 척 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늘 어린아이처럼 비어 있는 마음, 가난한 마음, 기대는 마음을 주소서”
3.신앙은 ‘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메는 삶이다. (28-30)
예수께서 책망하시다가 갑자기 초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는 죄인들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다. 율법을 지키느라 지친 사람, 잘 믿어보려다 지쳐버린 사람, 하나님 앞에서조차 무거워진 사람 ‘다’ 부르신다.
예수는 말씀하신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예수는 짐을 없애주신다 말하지 않는다. 대신 짐을 바꿔주신다고 하신다. 내가 지던 짐에서 예수와 함께 지는 멍에로 바꾸어주신다. 혼자의 책임에서 동행의 관계로 바꾸어주신다.
신앙은 짐이 없어지는 삶이 아니라, 함께 메는 삶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은혜를 입고도 회개하지 않아 곧 멸망당할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예수의 멍에를 함께 메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기 원합니다.”
(3)기도 -> 하나님, 기도드린 모든 제목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나눔(TENTATIO)
동네세메줄말씀묵상의 제목이 이러하다.
‘아는’ 자가 아니라 ‘오는’ 자가 되라!
에수의 가장 강력한 은혜를 세 도시는 알게 되었다. 그러나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슬기로운 자 곧 자신이 예수를 안다고 깝죽(?) 되는 자에게는 숨기시고, 도리어 어린아이처럼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나타내셨다.
이렇게 된 이유는 모두 모두 아버지의 뜻이다. 아버지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모른다. 그러니 ‘아는’ 자는 될지언정 ‘회개’ 하는 자는 되지 못한다.
에수는 결국 심판대로 인도하지 않기 위해 가장 강력한 초대장을 보내신다. “다 내게로 오라” 온유하고 겸손한 에수를 단지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같은 자’가 되게 하시려고 한다.
나도 제법 예수를 오래 알고 있지만, 정말 예수께 가고 있는가?
이번주 주일예배는 결심이 아니라 이동이 있기를 소망한다.
짐을 내려놓는 자리, 예수께로 나아가는 자리, 참된 안식이 있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렇다. 예수를 단지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께 ‘오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는 자신을 의존하는 자에게 안식을 주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