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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Sunday Service

마태복음 16장 1절부터 12절까지.jpg

 

 

 

‘불신’(不信) 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무지’(無知)에서 탈출하게 하소서!

 

(마태복음 16:1-12)

 

*비움(ORATIO)

*채움(MEDITATIO)

 

(1)관찰-> 마태복음 16:1-12은 크게 4메시지로 구성

 

1)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불신(1-4)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예수를 시험한다. ‘하늘로부터 표적을 보여주소서’

예수는 날씨의 표적은 분별하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이렇게 책망하신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야” (4절)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4절)

 

2)제자들의 무지(5-7)

 

제자들이 배에 오르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6절)

그러자 제자들이 서로 논의한다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7절)

 

3)예수의 가르침(8-11)

 

예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신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하여 떡이 없으므로 논의하느냐”(8절)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9절)

“기억하지 못하느냐”(10절)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11절)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11절)

 

4)제자들의 깨달음(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12절)

 

(2)새김-> 하나님이 주신 레마의 말씀

 

1)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배우기 위해서 예수께 하늘로부터 표적을 구한 것이 아니다. 시험하기 위해서다. 불신은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 자기방식대로 자기의 논리를 증명해 내려고 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들은 하늘의 표적은 잘 본다, 그런데 하늘의 구원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니 안한다. 그들은 날씨는 잘 해석하지만, 시대는 분별하지 못한다. 아닌 안한다. 영적인 무지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계시를 거부하는 불신이다.

 

예수는 ‘요나의 표적’만 보여주신다. 곧 자기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키는 표적만 말씀하신다. 예수는 인간을 위해 이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실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관심이 없다.

 

불신은 지적인 나약함이 아니라 영적인 저항이다.

 

2)예수는 배에 오르시면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명하신다.

그 때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제자들은 예수가 언급한 누룩을 빵이라 생각했다. 마태복음 15장 마지막 부분에 보여준 7병2어에서 남은 빵을 가져오지 못함이라 생각했다. 정말 무지하다. 제자들은 기적적인 7병2어를 목격한 후에도 빵 문제로 걱정한다. 기억이 희미해질 수록  두려움이 커진다.

 

예수는 5병2어와 7병2어 사건을 제자들에게 상기시켜 주신다. 무지는 기적이 없음이 아니다. 기적을 신앙과 연결시키지 못함이다.

 

예수는 두 번에 걸쳐서 이렇게 질문한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였느냐?”(9절, 11절) 제자들은 과거의 신실함을 잊어버렸다. 신자들의 무지는 영적인 둔감함이지 반항은 아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불신에서 나오는 저항이 아니다.

 

무지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고 현재에 불안해 하는 어리석음이다. 정말 안타깝다.

 

3)예수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제자들에게 주의하라는 의도가 무엇인가?

 

누룩은 보이지 않지만 강력하게 작용하는 특성이 있다. 거짓 믿음과 잘못된 생각은 은밀하게 자란다.  종교적 교만, 표적을 구하는 회의주의, 믿음없는 율법주의, 헌신없는 지적오만이 대표적인 특성이다.

 

불신은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무지는 생각을 흐리게 한다. 누룩은 불신과 무지의 싹을 키워서 결국 온 삶이 무너지게 한다.

 

의심이나 혼란으로 시작된 것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수의 경고를 깊이 새겨야 한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불신은 하나님을 시험한다. 무지는 하나님을 잊게 한다.

 

예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불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여’(4절) “A wicked and adulterous generation”

 

어떻게 불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악한 마음과 음란’으로부터 절연해야 한다.

 

예수는 제자들의 무지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8절)

“깨닫지 못하는 자들아”(9절,11절)

“기억하지 못하느냐”(10절)

 

어떻게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믿음을 키워야 한다’  

‘깨달음을 키워야 한다’

‘기억력을 키워야 한다’

 

오늘 본문 마지막에 이렇게 적혀있다.

“그제서야 제자들이 …. 깨달으니라”(12절)

아멘!!!!

 

정말 제자들은 예수의 이야기를 깨달았을까?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마태복음 16:13-21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요나의 표적’에 대해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13절)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다.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그런데 그 전에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질문하신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아멘!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내 마음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불신’(不信) 에 빠져있는 신자와 ‘무지’(無知)에 빠져있는 신자 중에서 누가 더 불쌍한 존재인가?

 

물론 둘 다 불쌍하고 불행하다.

그러나 굳이 대답한다면 무지한 자보다 불신에 빠진 자이다.

 

1)불신은 더 치명적이다.

 

예수를 거부한다.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 은혜르 경험해도 마음을 닫는다. 결국 십자가를 요구하는 자리로 나아간다. 돌을 들어 예수께 던진다! 불신은 고의적 거절이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명하셨다.

 

2)무지는 교정될 수 있다.

 

제자들은 오해했지만 떠나지 않았다. 꾸중을 들었지만 배 안에 남아 있었다. 결국 마태복음 16:16의 고백을 에수께 드렸다. 무지는 가르침을 통해 탈출할 수 있다. 성장할 수 있다.

 

에수는 불신자들에게는 ‘요나의 표적’만 남기셨지만, 무지한 제자들에게는 여러차례 마태복음13장에서 ‘천국의 7가지 비유’를 마치시고 ‘이제 깨달았느냐”(마 13:51) 하신 것처럼 제자들에게 ‘깨달았느냐?” (9,11절) 하시면서 계속해서 설명하시고 깨닫게 하셨다.

 

나의 문제는 무엇일까?

열방교회 성도들의 문제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의심하고, 예수님의 존재를 계속 불신하는 완고함인가?

아니면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깨닫지 못하는 연약함인가?

 

마지막 이런 생각이 든다.

 

‘무지’(無知)는 말씀공부를 통해 자라날 것이고, ‘불신’(不信)은 예배를 통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치유될 것이다! 마음이 부드러워질 것이다!

 

3)기도

 

“주님, 불신 가운데 머물러 있는 성도들을 벗어나게 해 주옵소서”

“주님, 무지 가운데 거하는 성도들을 탈출하게 하옵소서”

 

*나눔(TENTATIO)

 

1)3월 8일부터 시작하는 ‘생명의삶’ 성경공부를 통해 새가족들을 말씀의 세계로 초대하자. 무지에서 해방되게 하자.

 

2)월요일, 화요일 ‘성경강독’ 성경공부를 통해서 기존의 성도들을 말씀 앞에 서게 하자, 깊게 서게 하고, 높게 서게 하자.

 

3)3월 4월에 가질 대심방을 통해 불신에 젖어있는 성도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자. 예배의 은혜에 빠져들게 하고, 설교 말씀에 생명을 걸고 인생을 걸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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