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210번째 이야기 ㅡ 더 이상 '개독교'라는 말도 듣지 못하는 한국 교회를 위해 목 놓아 울고 싶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일반 서적은 최민재 작가의 ‘인간의 역사와 문명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고전 부활 운동’이고, 신앙 서적은 배덕만 교수의 ‘한국 교회, 인문주의에서 답을 찾다’입니다.
일반 서적입니다. 인문학적 개념들을 친근한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어 철학적 배경이 좀 부족한 목사들에게도 쉽게 인문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는 최민재 작가의 책입니다. 이 책은 총 17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대 로마 필사본 수집의 대장정으로 시작해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구상까지 인문주의 운동의 주요 인물들을 쉽고도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유럽을 휩쓴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은 피렌체를 중심으로 이탈리아반도에서 시작하여 점차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는데 예술, 건축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중세의 신학 중심을 넘어 인간 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해 나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잃어버린 키케로의 편지도 읽게 되고, 마누치오의 인쇄술 발명도 만나고, 미켈란젤로의 고전 예술 재해석도 이해하게 되고, 마키아벨리와 로마 정치사상도 접하게 되는데, 특별히 목사로서 빼놓을 수 없는 에라스무스와 기독교 인문주의를 접하게 됩니다.
신앙 서적입니다. 이 책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개혁의 주체에서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한국 교회의 갱신을 르네상스 인문주의 특별히 에라스무스의 사상을 통해 통쾌한 대안을 제시한 배덕만 교수의 기조 논문입니다.
“종교개혁 속에 스며든 인문주의의 자취를 (특히, 대표적인 에라스무스를) 추적해 나가면서, 세속화와 개혁의 대상으로 타락한 한국 교회가 소생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P. 8).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헬조선과 개독교, 2부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종교개혁, 3부는 에라스무스, 기독교 인문주의의 상징, 4부는 기독교 인문주의와 종교개혁, 5부는 기독교 인문주의와 한국 교회입니다. 인문주의(Humanism)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강조하고 우선적으로 인간의 삶과 조건에 관심을 두는 사상과 사조를 말하며, 둘째는 서양의 근대문화와 지적 전통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 14세기의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 의미가 포괄적이라면, 두 번째 의미는 제한적입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은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 교회, 신앙 자체를 진지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개척했고, 종교개혁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국에서 신학 하기 위해선 인문학적 통찰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신학이 인문학과의 대화를 거부하거나 그 필요성을 간과한다면, 신학은 시대적 적합성과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P. 104).
기독교 인문주의의 개척자이자 완성자로 불리는 대표적인 인물은 고전어를 연마한 후에 고대 문헌을 교정하는 작업에 온 힘을 쏟은 에라스무스였습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판하였고, 새로운 라틴어 번역을 소개했는데 마틴 루터를 포함하여 종교개혁자들이 그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자유의지론’ 책에서 이상적인 기독교란 성경에 토대한 도덕적 행위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기독교적인 삶을 위해 고대의 지혜와 기독교 신앙의 중재를 추구하였는데, 이러한 생각을 ‘그리스도의 철학’이라고 불렀습니다. 인문주의의 본질은 인간에 관한 관심과 존중입니다. 인간의 존재가 가격으로 매겨지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교회는 하나님에 관한 연구는 물론이고 인간에 대한 기독교 인문주의적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을 상품이 아니라 생명체,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인본주의의 견제가 없다면, 또는 인본주의와 변증법적 관계를 용인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좋아하는 이른바 신본주의란 인간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하나님이 목적이라는 명제는 신앙인이라면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수단이 된다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사람은 교회의 수단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수단도 될 수 없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P. 98).
목사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는 모임인 ‘책삶’(책읽는삶)에서 강조했던 배덕만 교수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의 연결고리가 된 기독교 인문주의 특히, 대표적 인물인 에라스무스의 사상으로 헬조선을 향한 인간의 가치를 선포해야 합니다. 근원으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단절된 세상과 소통해야 합니다.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저항하는 지식인으로 발언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종교개혁 500주년에 대한 감동과 도전도 있었지만, 오늘날 2025년의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고 있어서 마음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책이 써질 때만 해도 기독교를 미워하던 사람들이 ‘개독교’라고 하면서 남은 애증을 보여주었는데, 기독교를 무시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개독교’라는 말조차 들을 수 없어서 서글프기만 합니다. 책을 읽고, 책삶에서 저자 직강을 들으면서 확실히 깨닫고 배우게 된 것은 기독교사상에 토대를 둔 에라스무스의 ‘인본주의’와 비기독교, 반기독교에 토대를 둔 오늘날의 ‘세속적 인본주의’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개독교'라는 말도 듣지 못하는 한국 교회를 위해 목 놓아 울고 싶은 이때 에라스무스의 인간 존중의 사상으로 세속화와 개혁의 대상으로 타락한 한국 교회가 소생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신학대학교 출신의 배덕만 교수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어서 그나마 큰 위안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