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211번째 이야기- ‘아우스덴큰’(ausdenken), 이완용이 태어나게 할 것인가 윤동주가 태어나게 할 것인가!’
오늘 소개하는 일반 서적은 최태성 선생의 ‘다시, 역사의 쓸모’이고, 신앙 서적은 최주훈 박사의 ‘루터의 재발견’입니다.
일반 서적입니다. 최태성 선생은 과거의 시간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소중히 여기는 역사학자입니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역사에 관한 책을 선택하고자 했을 때, 광장 전쟁에서 증오에 기반을 둔 전한길 선생과 황현필 선생과는 달리 따뜻한 시선을 두고 있던 그의 책에 손이 갔습니다.
‘다시, 역사의 쓸모’에서는 전작 ‘역사의 쓸모’와 그 주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데 ‘역사가 우리에게 얼마나 실용적인 도움을 주는 학문’인지,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건강한 시선’이란 무엇인가를 재발견하게 해 줍니다.
책은 전체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감동과 도전을 주는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역사와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는 부분만 나눕니다.
1) 역사의 중요성입니다.
‘역사란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알리는 사람 곧 역사학자로서 세상에 이바지하는 방법은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과 지혜를 끊임없이 공유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고 이 시대에 맞는 의미를 찾아내서 알려주는 작업이 역사학자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2) 교육의 중요성입니다.
‘이완용을 만든 교육, 윤동주를 만든 교육’을 읽어 보면 두 개의 교육기관을 소개하는데 육영공원과 명동학교입니다. 그리고 이 학교를 비교하면서 교육기관의 교육철학이 어떻게 한 인간을 넘어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참된 교육은 단순히 지식인을 키워내는 데 그치지 않고 올바른 철학을 가진 지식인을 키워내는 데 힘쓰는 일일 것입니다.” (P. 219).
육영공원의 교육철학은 ‘엘리트를 키워내는’ 것입니다. 교육의 목표가 오로지 자신의 출세만을 위한 공부였습니다. 대표적 인물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나라마저 팔아 버릴 수도 있었던 1회 입학생 이완용이었습니다.
명동학교의 교육 목표는 ‘독립에 힘쓸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국어와 역사를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생각했고 우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인 윤동주 문익환 송몽규 나운규 등이 배출됩니다.
“육영공원과 명동학교의 사례는 현재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우리는 이완용을 키워내고 있을까요, 윤동주를 키워내고 있을까요?” (P. 226).
신앙 서적입니다. 최주훈 박사는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서 루터를 전공한 루터교 목사로서 21세기 존경받는 조직신학자입니다.
책은 전체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네 단어로 정리하여 소개한다면 ‘질문’ ‘저항’ ‘소통’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서평을 쓴 지형은 목사의 글을 보면 왜 책 제목이 ‘재발견’이라고 정해졌는지, 루터의 삶과 네 단어가 어떻게 책의 구조를 이루어졌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루터의 삶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즉 루터가 살아 냈던 삶이 이 귀한 책의 구조다. 진리를 추구하며 끊임없이 질문하라. 진리에 온몸을 바치며 비진리에 저항하라. 은혜로 다가온 진리의 말씀으로 세계와 소통하라. 그 토대 위에 오래된, 그러나 새로운 공동체 곧 교회가 움튼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사회에 하나님 나라가 펼쳐진다. 어쩌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루터를 처음 발견하는지도 모른다.” (p. 3).
16세기 루터와 21세기의 한국교회가 소통해야 하는 네 가지 메타포를 말하면서 특별히 ‘역사와의 소통’ ‘교육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1) 역사와의 소통입니다.
루터가 중요한 것은 500년 전 먼 나라 독일의 종교개혁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이해하는 루터와 ‘오늘 우리 시대 한국 땅’에서 건져 올릴 종교개혁의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하여 단지 종교개혁사적 의미만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 한국교회의 정체성의 문제를 발견하고 개혁해 나가는 것입니다.
“역사와 소통해야 한다. 이는 이 책의 초두에 언급했던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단지 종교개혁사적 의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P. 303).
2) 교육의 소통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위기 상황은 500년 전 종교개혁 직전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의 하나는 교육철학의 문제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단지 ‘영성’ 없는 목사들이 많기 때문일까? 내가 보기에는 신학 교육, 역사에 대한 이해, 소통에 대한 이해가 재고되어야 한다. 이런 모든 문제의 기저에는 ‘교육’의 문제가 숨어 있다.” (P. 47).
최태성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21세기 한국은 ‘이완용을 태어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윤동주를 태어나게 할 것인가?’
최주훈 박사의 책을 읽으면서 그 위기감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21세기 한국교회는 ‘개혁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개혁의 주체로 다시 거듭날 것인가?’
루터의 재발견은 위의 고민을 그냥 단순히 일회성으로 질문할 것이 아니라 (헤겔의 표현을 빌려서) ‘아우스덴큰’(ausdenken), 곧 ‘끝까지 생각하라’ ‘끝까지 질문하라’고 도전합니다. 웬만큼 생각하다가 잘 모르겠으면, 중간에 끊고 다른 것에 관심을 두는 질문이 아니라, ‘끝까지 생각하는 질문’을 말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질문하는 힘을 가진 사람을 두고 프로테스탄트라 부르고, 이는 ‘저항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목사들의 독서 모임 ‘책삶’(책읽는삶)에서 최주훈 박사가 저자 직강으로 던져주었던 이야기가 심장 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루터교인 이었던 헤겔처럼 ‘끝까지 질문’하고, 프로테스탄트 이름대로 진리가 아닌 것에 용감하게 ‘저항’하며, 종교개혁의 도구이자 목적이 된 성경 말씀으로 ‘소통’하며, 개혁의 대상을 넘어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 목사의 사명임을 잊지 마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