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전서 15:20-28)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세상은 죽음을 두고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글을 쓰는 사람에게 비유하면 ‘마침표’이다. 마침표는 "이제 끝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를 의미한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이다. 잠시 멈춤이다. 끝남이 아니다. 잠시 이별이다. 영원한 단절이 아니다. 잠시 눈을 감지만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왜 죽음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인가?
예수의 부활이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 쓰기 때문이다 (20-22)
20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십자가에서 예수는 죽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마침표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마침표를 찍지 않으셨다. 바울은 예수를 "첫 열매"라고 불었다.
첫 열매는 시작이다. 첫 열매라는 말은 계속해서 열매가 맺힌다는 의미이다. 예수의 부활은 사람의 부활과 이어진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예수처럼 다시 살아날 것을 예고한다. 예수가 살아나셨기에 우리도 살아난다. 예수의 빈무덤은 우리의 미래를 보여준다.
세상은 무덤 앞에서 "끝났다"고 말하지만, 복음은 무덤 앞에서 "계속된다"고 말한다.
예수의 부활이 마지막 원수 죽음을 굴복시켰기 때문이다. (23-26)
26절을 보면,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 말한다.
성경은 죽음을 자연스러운 친구라고 부르지 않는다. 죽음은 원수이다. 하나님께서 만든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세상에 들어온 침입자이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무력해진다. 돈도, 권력도, 힘도 죽음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마지막 원수 죽음을 이긴다.
죽음이, 무덤이 예수를 가두어둘 수 없다. 예수의 부활은 죽음의 권세가 깨졌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성도에게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죽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바울은 성도의 죽음을 "잠자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왜 잠인가? 다시 깨어나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 때 두려워하지 않듯이, 성도는 부활의 아침을 기대하며 눈을 감는다.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쉼표이다.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키기 때문이다. (27-29)
28절을 보면,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한다. 무슨 뜻인가?
성경의 마지막 장면은 죽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다. 회복된 창조이다. 완성된 하나님 나라이다.
예수의 부활은 그 나라의 시작이고, 우리의 부활은 그 나라의 완성에 참여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끝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장을 쓰고 계신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은 비극이 아니다. 영광이고, 승리이고, 생명이다.
세상은 죽음을 마침표라고 말한다. 그러나 복음은 죽음을 쉼표라고 말한다. 예수의 부활이 그 증거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이야기가 계속될 것을 보증하며,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며,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약속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보고, 무덤을 바라보며 절망하지 않는다. 예수 안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도의 인생 역시 무덤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에서 계속된다. 오늘도 믿음으로 고백한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이다!" 그리고 그 쉼표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부활의 주를 바라본다.
오늘 양로원 예배 때 고린도전서 15장 전채를 읽어드리고 죽음/부활/재림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였다. 전하는 자도 그러하지만 듣는 믿음의 선배들의 자세는 다른 어느 때보다 진지하였다.
이제 주일예배까지 3일이 남았다. 단기선교를 앞두고 있고, 가족수양회를 앞에 두고 있는 이 때 그 무엇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복음으로 증거하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특별히 선교를 떠나기 전에 보냄을 받는 자나, 보내는 자 모두가 복음을 통해 더 확실한 믿음의 뿌리가 내려지고, 더 나아가 선교현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혹시라도 죽음 가운데 갇힌 성도가 있다면, 이번 주 설교를 통해 무덤을 뚫고 예수처럼 부활하기를 소망한다.